<통일칼럼>남북 과기교류 저변 확대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6·15 이후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IT를 중심으로 몇 가지 성공적인 협력 사례를 만들어냈다.

 IT 분야에서의 남북협력 활성화는 첨단기술을 우선으로 하는 북한의 대외과학기술협력정책과 세계적 수준인 남한의 IT, 협력 당사자인 IT 종사자의 개방적 태도와 폭넓은 정보 원천 등이 함께 어우러져 빚어낸 결과라 생각된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이런 특성이 더욱 빛을 발할 것이므로 앞으로도 남북한 과학기술협력에서 IT 분야가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된다.

 그러나 국가적으로는 특정 분야에 편중된 협력으로 기업간 과열이 빚어지고 주변상황 변동에 자주 휘말리는 상황을 초래하기도 했다. 협력 내용에서도 인력양성에 치우쳐 경제협력과 연계된 더욱 심도있는 과학기술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비해 해외 동포들은 상당히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대북한 과학기술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협력 내용에서도 매우 심층적인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그동안 북한의 현실에 대한 기초연구와 기술 수요, 협력 모델 등에 대한 연구를 소홀히 했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북한이 IT뿐만 아니라 농업을 포함한 생명공학과 화학공학·기계공학·에너지 등에서도 상당한 기술 개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이들 분야에서도 활발한 대외협력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국방과 관련해 다소 예민한 분야인 기계공학은 예외로 하더라도 생명공학·화학공학 등 국민의 의식주 해결에서 극히 중요한 분야로의 저변확대는 지금 당장이라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들 분야에서도 몇 건의 남북협력을 추진했으나 북한의 실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대부분 중단되고 말았다.

 생명공학은 식량수급과 관련해 북한의 사활이 걸린 분야다. 따라서 북한은 40여개의 연구소를 가진 농업과학원과 별도로 과학원에 생물분원과 세포유전자과학분원을 설치하고, 우수 과학자를 집중시켜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이모작과 식물유전자 형질전환을 통한 신품종 육성, 비료를 적게 쓰면서 소출을 높일 수 있는 농법 개발, 미생물 비료와 미생물 농약·식물성장촉진제 개발 및 응용, 천연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의 개발과 대체식량으로의 이용 등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학공학도 공업원료와 관련해 북한 경제의 사활이 걸린 분야다. 북한은 지금까지 풍부하게 매장된 무연탄을 활용하는 원료·연료·에너지정책을 추진해왔고, 이 안에서 전반적인 계열화를 진행시켜왔다. 그러나 그 결과 세계적인 추세인 석유화학에 비해 자원 소모가 극히 많고 기술이 낙후하며, 규모생산이 어렵고 생산 코스트가 올라가는 등 심각한 문제들에 직면해 자력으로는 도저히 이를 극복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따라서 북한의 과학기술자는 C1화학과 석유화학 등을 활용한 근본적인 공업원료 전환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단 IT 분야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생명공학과 화학공학 연구도 고급인력과 설비·시약·품종 부족과 낙후한 인프라 등으로 난관에 처해 있다. 북한은 이런 문제를 신뢰할 만한 해외 동포들에게 호소하고 이들의 지원과 공동연구를 통해 해결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동북아 질서 재편과 세대교체 등으로 해외 동포의 대북한 과학기술협력도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우리 과학기술자가 대신해서 남북한 과학기술협력의 저변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심도 있는 협력으로 승화해나가자는 것이다.

 북한의 대외협력이 신뢰를 구축한 소수 과학자에 한정됐다면 바로 이런 분야에서의 매개 역할도 그동안 상당한 경험과 상호신뢰를 구축한 IT 분야 종사자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