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한글 수난시대

 ◆박광선 논설위원

  

 한글 수난시대인 것 같다. 한글 문법과 맞춤법은 무시된 지 오래고, 국적불명의 외국어와 비속어·은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세종대왕이 알면 땅을 치고 통탄할 정도로 우리말과 글을 둘러싼 오염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국민의 국어 사용능력이 크게 떨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나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최근 문화관광부가 서울대 민현식 교수에게 의뢰해 조사·발표한 한국인 국어 사용능력(100점 만점)은 중고교생이 평균 31.26점, 대학생이 34.23점, 일반인이 29.81점을 기록했다.이는 지난 95년 민 교수가 비슷한 수준의 문제로 측정했을 때의 평균 점수(50∼55점)에 비해 20점 가량 하락한 것이다.

 조사결과 ‘도와줄게’를 ‘도와줄께’로, ‘리더십’을 ‘리더쉽’으로 잘못 알거나 ‘맞추다/맞히다’ ‘가르치다/가리키다’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또 ‘국어가 어렵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7%에 달한 반면 ‘국어가 쉽다’고 답한 사람은 33%에 그쳤다. ‘국어를 싫어한다’는 응답자도 5.7%로 조사됐다고 한다.

 국제적인 의사 소통에 필수적인 언어를 묻는 질문에는 영어·중국어·일본어·불어 순으로 꼽았다. 흥미로운 것은 지난 94∼98년 일본 국어연구소가 일본에서 같은 질문을 한 결과는 영어·한국어·중국어·불어 순이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심각한 한글 파괴현상의 주범은 인터넷이다.

 통신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려는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일상언어와 다른 형태의 언어가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등 국어의 어법까지 바꿀 정도다. 채팅을 하면서 표준어와 한글표기준칙을 지키면 촌놈 취급을 당하며 따돌림 당한다니 말해서 무엇하랴.

 심지어는 한창 언어규범을 배워야 하는 초등학생들조차 ‘소리나는 대로 줄여서’ 적는 채팅언어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 글의 미래가 우려될 정도로 인터넷에서의 한글파괴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요즘 10대들이 가장 많이 쓰는 비속어가 섞인 줄임말이 “아이, 졸라 짱나(짜증나)”다.

 걍(그냥), 우리 칭구(친구)하자, 잼(재미) 업떠(없어), 방가(반가워요), 하이루(헬로), 남친(남자친구), 앤(애인), 담탱이(담임 선생님)도 인터넷 채팅방이나 게임방 등에서 네티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들이다. 심지어는 ‘쌩까는군’(거짓말하는군) ‘껌’(무시당하는 사람) 등의 은어나 ‘우띠발’ 등 비속어도 자주 등장한다.

 한글을 오염시키는 데는 방송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국적불명의 외국어와 비속어·은어의 생산공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Space A, @, 컨츄리꼬꼬 등 가수나 그룹의 이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요제목을 영어로 짓는 것도 대유행이며, 방송 프로그램은 영어를 이용한 조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어린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류나 빙과류 이름도 언어파괴에 한몫하고 있다. 졸라쫄라, 쭉쭉짜바, 뿌셔뿌셔, 짜요짜요, 섹시감자, 와일드바디 등 선정적인 비속어가 판을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속할 수 있는 법률적인 근거가 없어 방치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인터넷·방송·기업 등 한글 파괴 현상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심지어는 학교에 제출하는 리포트에까지 비속어를 쓰는 학생이 늘고 있다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한글은 우리 겨레가 만들어낸 가장 소중한 문화유산의 하나다.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된 것도 우리 글의 우수성을 세계가 공인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시청률과 매출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터넷 확산과 더불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한글 파괴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