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가 불과 몇달 남지않은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기대감에 잔뜩 부풀어 있다. 1년여 가까이 꽁꽁 얼어붙은 내수경기가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풀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특히 가전업체들은 디지털TV가 이번 월드컵의 최대 수혜품목으로 꼽히자 디지털TV 붐 확산을 위해 신제품을 속속 출시하는 등 벌써부터 불꽃튀는 판촉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것인지는 몰라도 정보통신부는 이번주 들어 때마침 디지털TV 보급·확대정책을 발표해 눈길을 모았다. ‘월드컵을 디지털TV’라는 슬로건 아래 100만∼200만원대 염가형 디지털TV(29인치)를 출시토록 유도해 연내 100만대를 보급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수출경쟁력을 높여 세계시장 진출을 늘린다는 게 정통부가 발표한 디지털TV 보급·확대정책의 요지다.
하지만 이날 적잖은 기대감을 갖고 정통부의 발표내용을 접한 가전업계 담당자들은 ‘현실감 없는’ 정책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모습이 역력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은 우리가 다 했는데 정통부가 이제와서 생색을 내려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말인즉 이렇다. 가전 3사는 디지털TV 보급 확산을 위해 이미 지난해부터 100만원 초반대로 가격을 낮춘 29인치 디지털TV를 출시하고 열띤 판매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와서 100만∼200만원대 염가형 제품의 출시를 유도하겠다니 참으로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뿐만 아니다. 가전 3사는 월드컵 특수에 힘입어 디지털TV 내수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올해 예상 시장규모를 전년보다 100% 정도 증가한 40만∼45만대 수준으로 높여잡았다. 연간 국내 컬러TV 판매량이 150만대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장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정통부에선 어떻게 100만대라는 수치가 그리 쉽게 나올 수 있는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업계가 지금 원하는 것은 ‘장밋빛 전망’이 아니라 ‘디지털TV 보급 확대를 위해 프로젝션TV에 부과한 10%의 특소세를 폐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 정책담당자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생활전자부·김종윤기자 jy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