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시멜(58)이 야후의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됐을 때 세계 인터넷·미디어 업계에서는 수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야후의 부진을 극복하기에는 힘이 부칠 것”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영화쟁이가 무얼 알겠는가”라는 비아냥도 뒤따랐고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르다”는 충고도 곁들여졌다.
확실히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는 달랐다. 할리우드도 마찬가지지만 기술과 맞물린 시장변화 속도는 실리콘밸리가 더 빨랐다. 회사간 경쟁도 극심했다. 이런 시장환경에도 불구하고 닷컴기업의 표상 야후는 대학같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말이 좋아 ‘자유로운 토론이 존재하는 회사’였지 거품붕괴 현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전혀 없는 상태였다.
한마디로 시멜 앞에는 회사 안팎의 난국을 모두 넘어서야 하는 과제가 놓여 있었다.
시멜의 역할은 분명했다. 야후에 투쟁의식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그는 “과거의 야후로는 안된다”면서 “모든 직원의 구상은 시장에서 결판이 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멜이 두 지역간 문화차이에서 오는 간극을 넘어서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또 경험도 풍부했다.
그는 오랜 기간을 전장과 같은 세계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 거대 영화사 워너브러더스의 공동 CEO로 보냈다. 야전사령관과 다름 없었던 것이다. 그의 능력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화는 하나로도 충분하다. 시멜이 78년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취임당시 10억달러였던 회사의 매출규모는 99년 공동 CEO로 회사를 떠날 때 110억달러로 늘려 놓은 것이다.
그가 업무에 본격 착수하면서 야후는 바뀌었다. 신속한 처리가 가능한, 상명하달식 명령체계가 수립됐다. 또 직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판단을 요구받았다.
지난해 4월 시멜이 취임할 당시만 해도 야후는 엉망이었다. 주요 창립 멤버들이 계속 야후를 빠져 나갔고 매출계획은 연초보다 40% 이상 하향 조정됐다. 야후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그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말 그대로 ‘조직의 대수술’이었다. 그는 감원에 착수, 회사전체 직원의 13%인 400명을 내보냈다. 또 44개의 사업부문을 6개로 줄였다. 그 결과 리스팅·커머스·통신·미디어·접속 및 엔터프라이즈 부문만 남기고 라이프 스타일 채널과 B2B마켓플레이스는 없어졌다.
상황은 좋지 않았지만 시멜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 이외의 어떤 요인에 의해서도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업계 리더로서 야후에 대한 신뢰감은 넘쳤다.
그는 야후의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 발벗고 뛰었다. 시장 자체가 가라앉기도 했지만 온라인 광고에만 의존해서는 야후의 경영상태를 개선할 수 없다고 판단, 특화된 서비스를 축으로 다양한 수익모델 개발에 전력을 기울였다. 음악전송 서비스인 프레스플레이에 한발을 들여놓았고 주가 정보 및 e메일 메시지 확인 서비스를 유료화했다. 목표에 한발 더 다가가기 위해 4억3600만달러를 들여 핫잡스를 인수했다. 또 부동산 사이트인 홈스토어와 온라인 여행 서비스인 트래블로시티의 인수도 추진했다.
특히 시멜 체제하의 야후는 SBC커뮤니케이션스와의 제휴라는 대담한 사업을 만들어냈다. 인터넷 접속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도 “매우 공격적인 전략이었고, 또 필요했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76%에 달하는 광고의존도를 50∼60%까지 줄이고자 한다면 꼭 추진해야하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시멜은 침착함을 갖춘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워너브러더스에서 공동 CEO로 그와 함께 했던 보브 댈리는 “그는 불이 나도 눈하나 깜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냉철함을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시멜은 또 신중한 스타일로 일반적인 할리우드 출신들과 달리 감정의 기복이 적다. 그는 특히 직원들을 대할 때 무관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방법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무관심한 태도는 직원들로 하여금 그를 즐겁게 하기를 원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앞으로 닷컴 거함 야후호를 책임질 시멜 앞에 닥쳐올 파도는 만만치 않다. 사업들이 야후에 곧바로 수익을 가져다 준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닷컴 붕괴가 한차례 지나가고 ‘후기 묵시록’ 시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해진 지금, 시멜은 인터넷 업계 경영자의 모델이 됐다. 하루살이로 끝날 디지털 혁명보다는 현실의 가혹한 요구를 이겨내는 경영자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