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기업 CEO를 만난다>(7)시스코시스템즈 존 체임버스 CEO

 인터넷 등 정보기술(IT)이 만들어내는 신경제의 나침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시스코시스템스(http://www.cisco.com). 이 회사의 존 체임버스 CEO(52)만큼 최근 인터넷의 부침을 온몸으로 경험한 경영자도 드물다.

 지난 84년 설립된 시스코시스템스는 라우터와 스위치, 이더넷, 광, 스토리지 등 인터넷의 핵심장비를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존 체임버스가 사령탑(CEO)에 오른 지난 94년부터다. 당시 12억달러에 불과하던 시스코의 매출액이 그후 거의 분기마다 60∼70%씩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됐다. 이는 연간 성장률로 환산하면 매년 200∼400%씩 매출액이 증가한 것을 의미한다.

 시스코는 인터넷 투자가 최고조에 달하던 2001 회계연도(2000년 8월∼2001년 7월)에는 매출액이 222억달러까지 늘어났다. 이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올리는 연간 매출액 230억달러와 맞먹는 액수다.

 이에 힘입어 존 체임버스 CEO의 주가도 덩달아 치솟기 시작했다. 체임버스 CEO는 96년 ‘비즈니스위크’지에서 ‘인터넷을 이끄는 25명의 최고경영자’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포천 등 경제 주간지와 뉴욕타임스 신문과 BBC 방송 등 전세계 여론을 선도하는 유명 매스컴들도 잇달아 그의 성공 스토리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이후 체임버스 CEO는 미국 정보기술(IT) 관련 업계를 대표하는 명사가 됐다. 조용하면서도 지성적인 말투와 상대를 설득하는 화술로 정평이 나있던 존 체임버스 CEO는 대중적인 인기 측면에서도 빌 게이츠 MS 전 회장이나 앤디 그로브 인텔 전 회장을 뛰어넘었다.

 체임버스 CEO은 호의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세계의 주요 기업 임원과 정부 지도자들을 만날 때마다 인터넷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체임버스는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한창 고조되던 2000년에는 주요 강연에서 “인터넷 관련 산업이 오는 2010년에는 세계 주요 국가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의 25%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지나친 낙관론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그의 주장은 시스코의 경영 실적을 통해 속속 입증되고 있던 터여서 비판론자들의 목소리는 안으로 잦아들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인터넷 전도사’라는 별명이 따라붙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러한 성과가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체임버스 CEO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다. 쾌속 항진을 계속하던 시스코호가 처음으로 이상 징후를 보인 것은 지난해 2월이다. 1달 전에 마감한 2001년 2분기 매출액이 67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서는 55% 늘어난 수치지만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치인 71억달러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90년대 이후 미국 IT 경제를 이끌고 가던 핵심 주역인 시스코가 지난 94년 이후 처음으로 월가의 전망에 못 미치는 실적을 내놓는 등 ‘피로증세’를 보이자, 그렇지 않아도 2000년 하반기부터 인터넷 분야 투자가 얼어붙어 불황을 겪고 있던 미국 IT 업계는 곧바로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 시스코의 악재는 그후에도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우선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이던 인터넷 업계에 불황이 확산되던 2002 회계연도에 들어서자마자 매출액이 1분기 67억달러에서 2분기 47억달러, 3분기 43억달러로 격감했다.

 체임버스 CEO는 한때 45일마다 30∼70%씩 증가하던 매출액이 거꾸로 약 30%나 줄어들 때의 심정을 “고속도로에서 100마일 이상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20마일로 속력이 떨어질 때의 기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스코는 그 동안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들이 시설투자를 할 때 이른바 ‘벤더 파이낸싱’의 형태로 빌려주었던 융자자금 중에서 돌려 받지 못하는 부실채권도 눈덩이처럼 불어나,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나 탐을 내는 초우량 기업이었던 시스코시스템스도 인터넷의 거품이 제거되는 세계적인 경제·경영의 큰 흐름에 홀로 맞서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CEO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별로 없다. 어려워진 상황에 맞춰 회사조직을 재정비하는 것뿐이다. 존 체임버스 CEO도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그가 그 동안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길거리로 내몰은 직원수만 약 8000명에 이른다.

 체임버스 CEO는 최근 C넷과 가진 인터뷰에서 구조조정 문제가 화제에 오르자 한때 가족처럼 지내던 동료 직원들을 내보내야 할 때의 심정을 “정말 속이 쓰렸어요(Oh, It really hurts)”라고 실토했다.

 이처럼 최근 1년 사이에 천당에서 지옥을 넘나들고 있는 체임버스 CEO가 앞으로 다시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 C넷은 이와 관련, “90년대 후반 인터넷 투자 붐에 편승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체임버스 CEO는 그 동안 과대 포장됐던 거품을 걷어내고, IT분야에서 전문지식과 경륜을 갖춘 최고경영자로서 참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경영성적표

 

 존 체임버스 CEO(시스코시스템스)

 

 종합평가 B

 

 리더십(B)

 인터넷에 기반을 둔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가장 늦게 알았다. 그는 또 기존 업체보다 신생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에 더욱 열을 올렸다.

 

 비전(B)

 인터넷이 우리 일상생활에까지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보기술(IT)에 대한 지나친 애착은 간혹 근거없는 결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업무수행(C+)

 인터넷거품이 걷히면서 이에 도박을 걸다시피했던 회사 경영목표가 산산조각났다. 그 결과는 구조조정뿐.

 

 인지도(A-)

 미국 IT 관련업계를 대표하는 명사. 대중적인 인기에서 빌 게이츠 MS 전 회장이나 앤디 그로브 인텔 전 회장을 오히려 뛰어넘는다. 특히 조용하면서도 지성적인 말투와 상대를 설득하는 화술이 장기.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