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산업정책이 무역입국에서 기술입국으로 바뀌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술력이 국가경쟁력의 척도이자 국부 창출의 원천이 되는 디지털시대에 걸맞은 정책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 등 신흥산업국이 급부상함에 따라 더 이상 가격경쟁력을 내세우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산업정책의 골간이 무역입국에서 기술입국으로 바뀌는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본다.
주지하다시피 영국이 1백여년간 세계경제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산업혁명의 결과이며, 80년대의 구조조정기를 어렵게 넘긴 미국이 10여년간 전후 최대의 호황을 누릴 수 있었던 것도 정보기술(IT)산업에 투자를 집중하는 등 기술력에서 앞섰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40여년을 유지해 오던 산업정책을 전환키로 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조치라고 본다. 향후 몇년동안의 신기술 확보 여부가 21세기 100년동안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최근 청와대에서 개최된 세계일류 경쟁력 실현을 위한 R&D 전략회의를 통해 산업정책의 중심을 무역입국에서 기술입국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우리 정부가 향후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 나갈 사업은 세계에서 통하는 초일류 기술개발이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기술개발인프라의 획기적인 개선을 통해 기술력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기술입국을 위한 실현과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AS리콜제다. 제품에 문제가 발생하면 교환해 주는 것처럼 기업에 채용된 졸업생의 품질이 떨어지면 일정기간 대학이 무상 재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또 현장맞춤형 기술교육을 통해 인력은 많으나 산업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가 없다는 문제점을 개선하고 공학교육 인증사업의 확대를 통해 오는 2005년까지 10만명의 고급 산업기술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국적기업의 R&D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다. 역점사업인 기술인력 리콜제의 실현 여부가 아직은 불투명하고, 과학기술과 산업기술의 조화와 균형문제도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십수년 전부터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현되지 않고 있는 국제간 기술협력체제 강화다. 국제간 기술협력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노력은 물론이고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나 양쪽 모두 기술협력을 위한 투자에는 인색한 편이다.
이미 중국이 세계의 제조창으로 부상하는 등 가격경쟁력을 통해 무역입국을 실현하겠다는 우리의 꿈은 물건너가고 있다. 실제로 전자·통신·자동차·조선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품목이 경쟁력을 상실했으며, 경쟁우위에 있는 산업과 품목이 추월당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해결사는 기술이다. 하지만 우리의 기술인프라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R&D 투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투자재원의 증대가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다. 필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없이 기술력 제고가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보면 지금부터라도 기술개발에 투자를 집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