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반세기만의 전환

◆박재성 논설위원

 

 ‘당신의 경쟁 상대는 누구입니까.’

 한때 이러한 광고 문구가 등장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한참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붐이 일고 있을 때였다. 특정 학교 학생이 등장해 경쟁 상대로 외국 유수 학교의 학생을 내세웠다.

 그것을 보고, 경쟁 상대로 국내의 누구이거나, 무엇쯤일 것으로 지레짐작했던 적지 않은 사람들은 허를 찔린 듯했을 것이다. 꼭 그러한 느낌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보면서 스스로 나의 경쟁 상대는 누구인지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 사람들이 많았을 법하다.

 서로 앞서거나 이기려고 다툼을 벌이는 것이 경쟁의 사전적 의미이다. 그래서 경쟁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그 앞에 생존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도 하는 게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생활이 아닌 생존이라는 말에 경쟁이 어울린다는 것을 곱씹어보면 그리 어감이 좋지는 않다. 그런데도 자본주의에 속한 사람들은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경쟁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보면 개인의 경쟁력에서 중요한 요소는 과거에는 힘이었다. 최근에 이를수록 다양해지고 있긴 하나 기술이나 고도의 지식 등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

 기업의 경우도 경쟁력을 가늠하는 잣대는 상당히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심역량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능력쯤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업의 핵심역량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서 핵심기술이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임은 틀림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그동안 산업화에 뒤져 일본이나 미국을 따라잡는 데도 바빴다. 이전받은 기술은 시대에 뒤떨어지거나 저급하기 일쑤고 고급 기술은 거의 예외없이 비싼 기술료를 주고 들여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러한 현상은 대기업보다도 중소기업에서 더욱 뚜렷히 나타났다. 바로 핵심기술 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나마 우리가 지금처럼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임금을 통한 대량생산이 크게 작용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정부는 산업정책의 중심을 소위 ‘무역입국’에서 ‘기술입국’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연구개발을 강화하기 위해 고급기술인력 양성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물론 이번 정책은 고급 기술인력 양성으로 일류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에 팔자는 점에서 무역을 경시하는 것이 아님에는 틀림이 없다.

 또 그것이 정말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될 것인지 또 무게가 실리면 어느 정도일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수십년 동안 내세웠던 ‘무역입국’의 기치를 내리고 명실상부하게 ‘기술입국’의 기치를 올린다면 그것은 큰 전환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고급 기술인력 양성은 일차적으로 정부가 대학이나 연구소·기업 등에 대해 실질적인 지원책을 내놓으면 될 일이다. 또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체의 경영자가 인력양성 마인드를 갖고 꾸준히 실천하면 더욱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다.

 매사는 뜻이 옳고 올바로 추진된다면 그 과정에서 다소 차질이 있다 하더라도 미흡한 점을 보완하거나 보충하면 된다. 정부의 이번 정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번 정부의 산업정책은 하나의 전환점으로서 선언적 의미가 큰 것으로 보인다. 양에서 질로의 전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부의 산업육성정책의 핵심이 ‘돈’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경쟁력의 요체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정부도 모를 리 없었겠지만 그것을 정책으로 보여주는 데에는 반백년이 걸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