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BM이 오는 3월 1일부터 팔미사노 현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새로운 최고사령탑으로 맞는다. 루이스 거스너를 대신해 최고경영자(CEO)에 오를 새뮤얼 팔미사노는 IBM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1911년 이후 여덟번째 CEO다. 팔미사노 CEO 내정자는 IBM에서 28년간 근무한 베테랑답게 역대 CEO 중 IBM 내부 사정에 가장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버·서비스 등 IBM의 핵심 조직을 두루 거친 것도 장점 가운데 하나다. 시장전문가들은 팔미사노가 거스너에 비해 다른 캐릭터를 갖고 있지만 IBM의 사업 방향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러나는 거스너와 부임하는 팔미사노를 중심으로 IBM의 모습을 조명해본다.편집자
◇부임하는 새뮤얼 팔미사노=새뮤얼(샘) 팔미사노 IBM 사장 겸 COO가 예견대로 오는 3월 1일부터 세계최대 컴퓨터업체를 떠맡는다.
올해 50세인 그는 서비스 그룹과 서버 부문 등 IBM의 수많은 요직을 두루 거쳤다. 한때는 아시아지역을 총괄하기도 했다. 지난 73년 IBM에 판매 대표로 합류했으며 2000년 9월에는 거스너에 의해 사장으로 승진됐다. 지난 수년간 팔미사노 CEO 내정자는 서버 라인 재조정, 서비스 사업 골간 마련 등 IBM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많은 중요한 일들을 깔끔하게 처리해냈다. 이때문에 거스너는 팔미사노에 대해 “중요할 때마다 그가 우수한 능력을 보여줬다”며 치켜세우고 있다. 실제 팔미사노는 관리능력뿐 아니라 최고경영자에게 필수적인 혜안과 통찰력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팔미사노가 IBM의 서버 사업을 맡은 이후 부터 IBM의 서버 사업이 살아난 것은 그의 경영능력을 알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다.
또 그는 IBM 내부에서 리눅스를 지지하는 최대 거물이기도 하다. 이때문에 앞으로 IBM의 리눅스 행보는 더 탄력이 붙을 전망인데 최근 IBM은 리눅스 전용 메인프레임을 내놓아 업계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연매출 900억달러에 육박하는 거함의 선장이 된 팔미사노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탄력받기 시작한 리눅스 사업의 성공적인 안착과 서비스 사업 확대, 서버 시장 1위 탈환,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PC사업의 흑자전환 등이다.
애널리스트들은 팔미사노 CEO 내정자가 현재의 IBM 경영진이 정한 사업전략과 방향 등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힘차게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업계관계자들은 거스너보다 더 사교적인 팔미사노가 앞으로 거스너와 달리 컴덱스 등의 전시회에서 연설도 하는 등 언론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 ‘제국 IBM’의 이미지를 옅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물러나는 거스너-만신창이 공룡을 회생시킨 경영의 귀재=93년 4월 1일, 당시 휘청거리던 공룡 IBM은 루이스 거스너를 새로운 CEO로 맞아 긴장하고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IBM은 조직에 활기가 없었을 뿐 아니라 컴팩 등 경쟁업체들에 시장점유를 계속 잠식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었다. 급기야 세계 PC시장에서도 컴팩에 정상자리를 내주는 등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거스너가 최고사령탑을 맡으면서부터 IBM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거스너는 무능력하면서도 장기 근속하고 있던 경영진들을 내몰았다. 그리고 비생산적인 조직에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는 과감한 ‘가지치기’를 시도했다. 무엇보다도 IT서비스가 장차 세계 IT시장의 총아로 부상할 것으로 간파, 이 분야에 주력했다. 그 결과 IBM은 현재 컴팩컴퓨터, HP, 델컴퓨터 등 내로라 하는 다른 컴퓨터업체들의 부러움을 사는 세계 최대 IT서비스업체라는 명예를 얻어냈다. 군살을 뺀 여러 조직도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반도체 부문인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애플에 칩을 공급하고 있으며 델컴퓨터, 컴팩컴퓨터 등 경쟁업체에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다른 컴퓨터 부품도 제공하고 있다.
또 IBM이 독보적 강점을 갖고 있는 메인프레임 기술을 서버에 접목해 특히 최대 유닉스 서버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 타격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데이터 스토리지 분야에서도 최대 업체인 미국 EMC를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이처럼 거스너 회장은 부임 당시 수십억달러 적자에 허덕이던 ‘만신창이 공룡’을 연간 매출 884억달러 그리고 연수익 77억달러(2001년 회기 기준)를 낳는 블루칩(모범 기업)으로 변신시켜놓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부분’은 있다. 바로 IBM의 유일한 적자 사업인 PC사업이다. 그는 PC사업을 흑자로 돌리기 위해 생산모델을 줄이고 단가를 줄이기 위해 아웃소싱을 늘리는 등의 개선작업을 추진해 왔는데 이제 흑자 전환이라는 공은 결국 팔미사노 새 CEO에게 넘어 가게 됐다. IBM에 오기전 아메리칸익스프레스컴퍼니 사장(85∼89년) 등을 지낸 경영의 귀재 거스너는 퇴임을 결정한 후 IBM 직원들에게 CEO 교체 전자우편을 보내면서 “IBM을 깊게 사랑하고 있으며 영원히 IBM맨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