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증권금융부 차장 kwlee@etnews.co.kr>
지난 27일 코스닥시장의 문을 두드리던 20개 IT기업은 적지않은 실망감을 맛봐야 했다. 올해 처음 실시되는 코스닥등록 예비심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은 했지만 무더기 탈락이라는 결과를 보고 심사청구를 준비하던 기업은 충격에 휩싸였다. 우려가 현실로 닥치면서 할 말을 잃었다. 45%의 승인율. 예년 같으면 80%를 웃돌던 승인율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코스닥위원회의 등록예비심사 강화는 지난해 말부터 계속 강조돼온 사실이다. 위원회의 공식발표는 심사기준의 강화 때문이 아니라 청구업체의 질적 요건이 다른 심사 때보다 현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사기준이 강화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10월 시장등록을 준비하던 업체들이 서둘러 신청했기 때문에 기본요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함량미달의 기업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특히 예비심사에 앞서 지난 14일 강운태 민주당 제2정책조정실장이 코스닥등록 심사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더 더욱 개운치 않다.
이런 사건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다음날 코스닥위원회가 위치하고 있는 증권업협회 건물에서는 아침부터 일대 시위가 벌어졌다. 얼마 전 퇴출 결정이 내려진 한국디지탈라인(KDL)의 투자자들이 몰려들어 퇴출 결정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등록과 퇴출을 두고 이틀 새 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문제는 두 건의 사건 뒤에 숨어 있는 기업과 투자자들의 코스닥위원회에 대한 저항감이다. 예심에서 떨어진 기업 경영자는 부실기업 하나 퇴출시키는 데만 무려 3번의 심사에 반년 이상 걸리면서 등록심사만 까다롭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불만이다. 또 퇴출기업의 투자자들은 미적지근하게 퇴출 결정을 끌어 기대감만 갖게 하던 위원회의 처사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무딘 퇴출의 칼날을 휘두른 코스닥위원회의 능력을 탓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등록심사를 까다롭게 한다고 해도 부실기업 퇴출이 어려우면 시장은 ‘이상 비대’해진다. 결국 소화불량으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려야 하는 시장은 제 갈길을 못찾고 헤메일 수밖에 없다.
물론 코스닥위원회의 의지는 단호하다. 의지대로라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코스닥위원회가 등록심사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문제가 안된다. 그러나 퇴출 결정만큼은 쉽지 않을 것 같다. 퇴출당하는 기업이 법적대응을 불사할 경우, 또 일정기간 시장에 잔류해야 하고 이런 건들이 겹칠 경우 업무에 차질을 빚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투자자들의 잇단 항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스닥에서는 지난해 등록보다 퇴출이 많았다. ‘나스닥이야 성숙한 시장이니까’라고 치부해 버리기 전에 코스닥의 퇴출 움직임이 너무 둔하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스닥의 경우 시가총액 기준 시장규모가 GDP의 20%에 육박하지만 코스닥은 5%에 불과하다는 규모적 측면에서 해석한다면 얘기는 된다. 그러나 단시간에 급성장한 코스닥시장의 ‘정화’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부실기업을 솎아내는 것에 보다 서슬이 예리한 칼날이 필요할 듯싶다.
과감한 퇴출이 등록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것보다 우선이다. 재난시 안전을 위해서도 비상구가 필요하듯 입구(entrance)보다 출구(exit)를 먼저 확보하는 정책이 필요한 때다. 코스닥위원회에서 벌어진 이틀간의 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