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IT기업 CEO를 만난다>(11)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스 제임스 모건

 정보기술(IT) 기업의 CEO 중에서 제임스 모건(63)만큼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도 드물다. 그는 심지어 가정내에서조차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 아니다. 그의 아내인 레베카 모건은 9년째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 77년부터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의 경영을 맡아온 모건은 어떤 IT 기업의 CEO보다도 장수하고 있는 CEO다. 그는 니치 시장에 안주해온 어플라이드를 연간 70억달러의 매출규모를 자랑하는 반도체 제조왕국으로 탈바꿈시켰다. 어플라이드는 반도체 제조공정의 모든 단계를 지원하는 몇개 안되는 장비 업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공급하는 장비 중에는 실리콘 웨이퍼 공정장비, 회로패턴 식각 장비, 완제품 결함 검출 장비 등이 있다.

 VLSI리서치의 애널리스트인 리스토 푸하카는 “어플라이드의 가장 큰 위협은 어플라이드 자신밖에 없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같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어플라이드가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다시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어플라이드의 운명은 반도체 업체들의 주문에 달려있으며 이들이 새로운 장비의 수주를 결정할 때까지 몇 분기를 기다려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어플라이드는 지난해 극심했던 불경기의 여파에 아직까지 시달리고 있다. 최근 3700명을 감원해야만 했으며 주가는 52주 최고치인 59달러 10센트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치는 26달러 59센트로 주저앉았다.

 그러나 모건은 최근의 IT산업 붕괴가 그의 올해 전략을 수정하도록 만들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연구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모건은 “급변하는 비즈니스계의 리더가 확고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혼란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건의 확고한 리더십은 그가 10대이던 50년대 가족의 통조림 제조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35명의 직원을 관리하면서부터 시작해 온 그의 풍부한 경영 이력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는 코넬대에서 ROTC 코스를 밟은 후 60년대 육군 군수 사령부에서 경영자문을 맡았었으며 이후 텍스트론의 경영을 맡아 15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던 이 회사를 4년 만에 정상화시켰다.

 텍스트론에서의 경험은 그가 연간 29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하던 어플라이드에 합류했을 때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칩 제조장비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모든 조직을 과감히 정리해 한때 매출이 1400만달러까지 떨어졌었다. 그의 이같은 구조조정은 결국 성공했다. 어플라이드는 90년대 말 최대 시장인 아시아의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구가했으며 99년 17.7% 성장한 데 이어 2000 회계연도에는 87.7%의 기록적인 성장을 달성했다.

 모건의 확고한 리더십이 현재와 같은 격랑의 시기를 헤쳐나가는 데에도 필요하느냐는 점은 아직 의문이다.

 모건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근 분기에 매출의 21%에 해당하는 막대한 연구개발(R&D)비를 투입했다. 모건은 전에도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R&D 투자를 늘렸었다. 일례로 지난 97년과 98년 침체기 동안 14%와 16%를 R&D에 투입했다. 이는 경기가 좋았던 96년과 2000년의 각각 12%에 비해 많은 것이다.

 어플라이드는 이같은 공격적인 R&D 투자로 과거 0.13미크론 공정, 동 배선, 300㎜ 웨이퍼 등 세번의 최신 기술로의 전환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와 관련, 텍사스인스트루먼츠의 로직운영 매니저인 래리 톨슨은 “그들은 다양한 제품과 다른 기업이 손댈 수 없는 최신 기술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비록 앞으로의 R&D 투자가 이전처럼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지만 모건은 그동안 기회를 만들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는 데 대해 두려움이 없었음에는 틀림없다.

 모건은 해외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경우에도 해당 지역이 잠재적인 성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판단된다면 몇년간의 손실도 기꺼이 받아들여왔다. 일례로 84년 중국본토에 진출한 어플라이드는 90년대말 아시아에서 반도체 공황이 발생했을 때도 철수를 고려하지 않았다. 이는 회사의 미래는 해외 시장의 성공 여부에 달려있으며 남들보다 초기 시장을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어플라이드가 다국적(multinational) 기업임을 강조해왔으며 81년 이후부터는 아예 회사 문서에 ‘국제(international)’와 ‘국내(domestic)’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VLSI의 푸하카는 “어플라이드는 신제품이 출시되더라도 고객의 오래된 설비가 쓸만하다면 끝까지 책임지고 유지보수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어플라이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비즈니스 관계를 중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