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철 아이온커뮤니케이션즈 사장
대한민국의 인터넷 성적표는 괜찮은 편이다. 세계 제일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고 있고 이용현황도 외국에 비해 우량하며 인터넷 관련 기업의 수나 질도 괜찮다.
그러나 현재의 성적표가 반드시 미래의 성적표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재의 성적표가 너무 좋다는 것이 다가오는 기회를 제대로 이용하지 않는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자랑하는 케이블모뎀이나 ADSL과 같은 장비를 갖고 구축한 인프라만 하더라도 이미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구축되기 시작한 100Mbps의 네트워크 인프라에 비교하면 크게는 100배, 작게는 12배 이상 속도차이가 난다.
사실 이러한 인프라의 경쟁력에 앞서 생각해야 하는 또 하나의 화두는 ‘새로운 인터넷’이다. 새로운 인터넷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생활속의 인터넷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엑스인터넷(X-Internet)이라고도 하고 차세대인터넷, 넥스트인터넷(Next Internet)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말 빌 게이츠 MS 회장, 조지 콜로니 포레스터리서치 회장, 칼리 피오리나 HP 회장의 모든 기조연설에는 새로운 인터넷이라고 하는 공통분모가 들어 있었다. 이들의 얘기를 하나의 문구로 정리하면 ‘인터넷은 기술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일반회사에 근무하는 A씨의 예를 들어보자. A씨는 오후 7시께 퇴근을 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A씨가 회사를 나서기 전 집에 있는 냉장고는 우유가 떨어진 것을 알아내고는 무선인터넷으로 A씨의 자동차에 연락을 보낸다.
A씨의 자동차는 A씨가 차에 타자마자 우유가 떨어졌음을 알리고 현재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 및 매장 리스트를 보여주면서 가격비교와 현재 매장의 분위기까지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A씨는 이 중에서 가장 가깝고 싼 매장을 선택하고 쇼핑을 하러 간다.
A씨는 쇼핑을 하면서 저녁에 먹을 냉동식품 몇개를 추가구입해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와 A씨의 집에 있는 홈오토메이션장비·교통정보장치는 서로 통신해 A씨가 집에 도착하려면 1시간 10분이 남았다는 것을 판단한다. 그리고는 보일러를 바로 켜고 전열기구 등은 1시간 후에 켜지도록 세팅한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TV가 켜져 있는 것을 확인한 A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시간에 생방송으로 방영됐던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가 다운로드됐다는 것을 확인한 후 플레이버튼을 누른다. HDTV급으로 전송되는 VOD서비스는 언제 듣고 봐도 느낌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말이다.
TV를 보면서 A씨는 매장에서 구입한 냉동식품을 전자레인지 앞으로 갖고 간다. 전자레인지에 연결돼 있는 바코드 리더기로 냉동식품의 바코드를 읽어내자 전자레인지는 냉동식품 요리정보 서버에 접속해 해당 냉동식품을 어떻게 요리하는 것이 가장 맛있는지를 자동판단, 요리를 하고 A씨는 편안하게 TV을 보면서 저녁을 즐긴다.
아주 단적인 얘기지만 이 예를 보면서 현재 우리가 열광하고 있는 대부분의 기술이 새로운 인터넷을 위해 준비돼 가고 있다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
현재 도입되고 있는 IPv6를 비롯해 인터넷에 연결되는 정보화가전기기, 속도가 빠른 무선네트워크, 디지털엔터테인먼트, 생활에 알맞은 각종 콘텐츠, 네트워크게임, 음성인식기술, 상호 동기화가 가능한 인터랙티브한 웹서비스, P2P기반의 네트워크 플랫폼, 저렴한 통신비용, 각종 보안기술 등 이러한 모든 각각의 기술과 여러가지 정보가 새로운 인터넷을 완성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제 새로운 IT환경은 각각의 기술을 어떻게 구현하고 월등하게 만드느냐 보다는 각각의 요소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해 생활에 이로운 환경을 만드느냐로 그 중심축이 변화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장비를 얼마나 수출했으며 우리나라의 인프라가 얼마나 좋고 100명당 인터넷 이용자가 얼마나 된다고 하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