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구를 평가한다는 거야.’
‘벤처 살생부야, 뭐야.’
전경련 산업협력재단이 추진하는 ‘민간경제계 공동벤처기업등급평가사업’의 세부계획안이 확정되기 전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벤처기업과 기술에 대한 평가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미 각종 신용평가기관과 연구단체 등에 의해 지엽적으로 진행돼왔다. 가치평가를 원하는 벤처기업이 적지 않았고 투자자와 기업체 모두 분석자료의 필요성을 인정해왔다.
그럼에도 이번 산업협력재단의 사업이 새삼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등급’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1등, 2등이라는 줄세우기 느낌과 ‘대기업’이 평가 주체인 데서 오는 거부감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정부의 벤처육성정책이 잇따르던 지난 수년간 존재한 전통 대기업의 피해의식을 기억한다. 또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의식 또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수년간 벤처와 대기업은 마치 대립 개념처럼 우리에게 비춰졌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미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자금과 마케팅 분야 등에서 다양한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국가 장래를 위해 이 같은 협력은 한층 확대돼야 한다. 정부가 대기업·벤처기업 공동마케팅을 통한 해외시장 개척을 부르짖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산업협력재단의 사업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벤처업계의 목소리를 잘 들어보면 내부적으로는 찬반 양론이 모두 존재한다. 대기업과 거대 캐피털의 지원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될 것이라는 기대와 또 다른 형태의 대기업 종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이다.
이번 사업은 우량벤처를 가려 파트너로 삼겠다는 대기업과 캐피털업계의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벤처기업으로서도 독자적인 사업을 진행하다가 대기업과의 협력이 시너지를 가져 올 것으로 판단될 때 등급평가를 의뢰하고 파트너십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이번 사업이 잘못 운영될 경우 상대적으로 피해를 보는 벤처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사업운영위는 보다 철저하고 합리적인 잣대로 평가시스템을 만들고 기업정보의 보안과 운영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벤처기업이 믿고 노크할 수 있는 ‘벤처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디지털경제부·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