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두고 봐야 안다?

◆이현덕 논설실장

조상의 예지력과 통찰력은 놀라울 정도다. 조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많은 속담이나 격언을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우선 긴 세월의 간극 속에서도 여전히 사리에 어긋남이 없다. 인간의 행동이 속담이나 격언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시공을 초월해 여전히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게 바로 속담이고 격언이다. 오죽하면 속담이나 격언을 금언(金言)이라고 했을까. 우리의 고귀한 문화자산이 아닐 수 없다.

 흔히 사용하는 속담 중 이런 말이 있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해도 곧이 듣지 않는다’는 말. 메주를 콩으로 쑤지 팥으로 쑤는 사람은 없다. 이처럼 엄연한 사실인데도 믿지 못하겠다니 이해하기 어려운 속담이다. 하지만 요즘 사회분위기를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사회에 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방증하는 까닭이다. 이와 함께 ‘두고 봐야 안다’는 말도 유행이다. 겉만 보고는 그가 백로인지 까미귀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속까지 봐야 믿을 수 있겠다는 것이다.

 요즘 고위공직자나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의 앞에 한 말과 뒤의 말이 다르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누구의 책임이며 무엇이 문제인가.

 물론 당사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돌려댄 책임이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에 만연하는 게 불신풍조다. 말과 행동의 이중성이 사람들에게 불신을 주고 있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위언(僞言)이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다. 그런 것이 하나둘 쌓이면 종착점은 불신이다. 정부와 국민, 직장의 상하 또는 동료, 가족, 친구 사이의 불신의 벽이 갈수록 높이 쌓일 것이다. 진실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 조상은 남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의 무게와 같다(男我一言 重千金)고 했다. 자신이 한번 한 말은 목숨까지 걸며 책임을 지려고 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것을 가문의 최대 수치로 여겼다.

 그런데 최근에 한 입으로 두 말해 자신을 망치거나 치도곤을 당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두 말하다 구속된 사람도 있다. 윤동주의 서시(序詩) 한 구절을 인용해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다”던 모씨는 조사결과 이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 구속됐다. 정부 고위직에 있던 어떤 이는 의혹사건과 관련해 “전혀 무관하다”고 부인했으나 이 또한 유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이 조사 중인 각종 게이트와 연관돼 한결같이 “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손사래를 치던 고위직 인사 중 처음에 한 말과 나중 말이 일치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정치인이나 언론계 간부도 그런 부류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사회에 냉소주의와 불신감이 팽배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정책도 불신풍조 조성에 일조했다. 최근에는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정부의 말 뒤집기가 쟁점이 된 적이 있다.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나 불가능한 일도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말이 앞 다르고 뒤 다르다면 누가 그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고위공직자일 때 그 화는 부챗살처럼 정부 전체로 확산되는 법이다.

 어떤 경우든 말에는 진실을 담아야 한다. 지금 같은 불신풍조가 계속 되면 디지털시대 구현에도 역효과를 가져온다. 디지털시대는 곧 신용사회다. 사이버공간을 통한 거래나 신용카드 발급 등이 모두 신용을 담보로 한다. 금융기관의 신용대출도 그렇다.

 자신의 말에 책임지는 사회, 진실을 말하는 사회, 앞과 뒤가 같은 사회, 그래서 남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디지털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