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포럼>이민화와 벤처강국의 꿈

◆한정화 벤처연구소장

 우리나라의 대표적 벤처기업인 메디슨이 도산하자 창업자인 이민화 회장에 대해 수많은 비판 내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오만과 독선의 경영자’ ‘방만한 투자와 재벌흉내’ 등의 표현과 함께, 개인의 도덕성까지 의심하는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비판들이 나오게 된 상황적 여건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너무 부정적인 면으로만 치우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메디슨의 도산은 한 기업의 성공과 실패 차원을 떠나 우리나라 벤처역사의 한 장이 접어짐을 의미한다. 이민화 회장은 지난 십여년 동안 벤처기업인들뿐 아니라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모델이 되어 왔다. 그는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공학박사로서 정통파 기술창업인의 길을 걸어 왔다. 80년대 중반 벤처의 불모지에서 초음파 영상의료기기라는 당시의 첨단분야에 과감하게 도전하여 기업을 일궈냈으며 그가 모델이 돼 수많은 후배 벤처기업인들이 등장했다.

 그는 95년 벤처기업협회를 창립하여 다양한 정책건의를 통해 우리나라 벤처생태계의 제도적 기반구축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 새로운 성장엔진으로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인지한 정부는 업계의 건의를 받아들여 회수시장인 코스닥을 설립하고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벤처육성에 앞장서게 되었다. 그 당시 그는 동료 벤처기업인들과 함께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창업로드쇼를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이 벤처창업 붐을 일으켰고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던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IMF와 디지털 지식경제시대의 도래를 19세기 일본의 개항을 가져온 흑선과 산업혁명의 물결에 비유했다. 우리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일대 사건으로 인식하고 여기에 대응하여 우리나라가 도약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 벤처육성에 대한 사명감과 열정을 가지고 동분서주했다. 이러한 점에서 벤처기업협회 회장이 된 이후 그는 기업인이 아닌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간 그의 주변에서는 이 회장이 대외적 활동에 너무 시간을 쓰다보니 자기 기업의 경영에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관련 다각화를 통한 기업군의 성장에 대한 과도한 자심감과 과잉투자가 현재 어려움을 초래한 또 다른 원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주장한 ‘벤처연방제’나 ‘초생명기업’은 이론적 타당성을 떠나서 재벌식 경영에 대한 반감을 가진 일반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던 것이 사실이다.

 이 회장은 자신의 논리와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반대논리를 가진 사람들과 자주 부닥쳤었다. 자기 주장이 강하다 보니 논쟁을 벌이게 되고 그 결과 여기저기서 미움을 산 적도 많았다고 본다. 어떠한 이유로도 경영실패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지만 그가 기여한 공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실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한 사회다. 열가지를 잘 하더라도 한두가지의 결점만 있으면 쉽게 매도하는 풍토가 도전정신과 창의성 발현의 걸림돌이 돼 왔다. 벤처가 이러한 사회적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비록 현재 이민화 회장이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가 제시했던 벤처강국의 꿈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불굴의 의지를 가진 수많은 벤처기업인들의 도전과 열정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다.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였지만 한 때 실패한 경영자로 낙인찍혔던 스티브 잡스가 픽사를 만들어 화려하게 컴백을 하고 경영난에 봉착한 애플사를 다시 일으켰듯이 이 회장의 성공적인 재기와 벤처강국 대한민국의 미래가 도래할 것을 기대해 본다. 그때 다시 한번 보다 넉넉한 마음으로 이 시기를 회고하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