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산업은 IT분야의 건설업.”
기자가 시스템통합(SI)산업 취재를 시작할 때 선배기자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내려준 정의다.
운영시스템 첨단화를 위한 각종 장비와 솔루션을 조달하고 하도급 업체와 함께 총괄적인 구축공사를 진행하는 일련의 활동이 건설업의 그것과 닮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건설업에서 등장하는 각종 병폐까지 닮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프로젝트 입찰때마다 판치는 저가경쟁. 업체들은 저마다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저가입찰에 뛰어들고 이는 그대로 업체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건설분야에서는 치열한 로비의 결과로 입찰단계에서 특정업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SI는 IT분야에 무지한 발주자가 계획수립시 대형 SI업체에 문의하는 구조 때문에 중요한 정보가 특정업체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중소업체들은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현행 1주일밖에 안되는 제안서 작성기간을 최소 45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기득권을 확보한 선행업체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우리 SI산업은 ‘IT기술의 총집합소’라는 겉모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인 병폐들을 많이 안고 있다.
SI산업은 미래 IT인프라 구축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과 같은 아픔을 겪기도 했던 건설업의 어두운 면을 따라가서는 안된다.
최근 입찰하한가 도입으로 최저예산을 보장하는 프로젝트가 등장하고 SI업체들도 예전의 백화점식 사업형태에서 벗어나 특화된 자체 솔루션 확보를 강조하며 경쟁력 강화에 나서는 등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지금이라도 발주자와 SI업체의 자성을 통한 내부 경쟁력 강화가 선행된다면 과거 중동지역을 필두로 전세계를 주름잡았던 우리 건설업처럼 세계 IT인프라 구축현장에서도 국내 SI업체들이 선전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진영기자 jych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