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포럼>게임과 영화

 ◆<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 young@softmax.co.kr>  

전세계적으로 ‘컴퓨터 게임’이 대표적인 성장산업으로 자리를 잡은 지는 이미 오래다. 양적인 측면에서 게임은 반도체 시장에 버금가는 거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내용면에서도 게임산업은 아케이드, 비디오 콘솔, PC 온라인 등 3종의 플랫폼이 3박자로 어우러져 발전해 왔다.

 한국에서도 게임은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주자로 꼽히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될 정도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여겨지고 있다. 시장 규모도 1조원을 넘어 섰고 관련 업체도 1만개에 이른다.

 그래서인지 호사가들은 곧잘 게임을 영화와 비교하곤 한다. 물론 시장 규모만 놓고 보면 게임 시장은 영화 시장의 2배에 해당한다. 게임의 문화적 영향도 막강하다. 미국이나 일본만큼 대중적이지 못하지만 영화에 버금가는 문화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영화산업의 축이 대부분 성인들의 취향에 맞추어져 있는 반면, 게임의 경우 어린이나 청소년층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소년층에게 있어서 게임의 문화적 파급력은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더욱이 한국에서 게임이 산업적인 기반을 갖고 발전해온 것이 고작 20년 남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기적에 가까운 발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필자의 느낌은 외부에서 보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한국의 영화산업과 비교해 보면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에 빠진다.

 영화산업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복잡한 심정의 첫번째는 서러움이다. 우리는 영화산업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스크린 쿼터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물론 최근들어 우리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절반을 넘어서면서 ‘스크린 쿼터제의 폐지나 축소를 둘러싼 논쟁이 일고 있지만 이 제도는 오랫동안 우리 영화산업의 방파제 역할을 해 왔다. 영화에 스크린 퀘터제를 두는 이유는 아마도 영화가 한 나라의 문화적인 색채를 좌우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국 문화를 중시하는 프랑스도 스크린 쿼터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는 어떤가. 물론 외산 게임의 수입을 규제하기 위한 ‘게임 쿼터’제도를 두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게임 업계에 발을 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껴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의 게임산업이 지금처럼 커지고 문화적 영향력이 막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게임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사족이겠지만 게임도 문화 상품이며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서러운 이야기’는 끝을 맺겠다.

 영화산업을 생각하면 또 한가지 느껴지는 감정의 일단은 답답함이다. 물론 역사가 짧아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막내격인 게임이 맏형인 영화를 흉내낼 수 없겠지만 게임 시장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할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여러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게임업계에는 다양성이 없다. 예컨대 한국영화를 돌아다 보면 조폭영화가 있는가 하면 코미디도 있고 SF 액션 대작이 있다. ‘친구’가 인기를 얻자 비슷한 영화도 양산됐지만 ‘공공의 적’도 나왔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작품도 선을 보였다. 반면 게임업계에서는 이같은 다양성이 부족하다. 한 업체가 DDR를 만들어 히트하면 모두 DDR를 만들고 팬터지나 액션 온라인 게임이 히트하면 많은 업체들이 유사한 게임을 만든다. 아동용 아케이드 게임이 인기를 끌면 우후죽순격으로 비슷한 게임이 수십종 쏟아진다. 혹자는 게임 업계에는 충무로나 대학로의 예술혼과 장인정신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필자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현재 게임 업계에 만연한 ‘베끼기’ 현상은 단순히 장르의 차원을 넘어서 플랫폼 편중으로까지 이어진다. 몇년전부터 온라인 게임 열풍이 불면서 너도 나도 온라인 게임 개발에 나서 이 시장은 개발 측면에서 과포화현상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상당수 중견 PC개발사들도 온라인 게임 개발에 나섬에 따라 국산 PC게임의 기반이 붕괴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두가지 형태의 게임이 균형있게 발전하는 외국과는 달리 온라인 게임이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다른 한쪽의 자생력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 국내 게임산업의 현주소다. 온라인 게임이 발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것이 오프라인 게임의 공동화로 이어질 정도라면 업계 전체 차원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해들어 때 늦게 비디오 콘솔 게임이 뜨거운 이슈로 대두하고 있다. 이런 저런 상황은 이해되지만 또 수십 수백개의 업체들이 콘솔 게임 사업 계획서를 짜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된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CF처럼 다른 사람이 모두 예스(yes)라고 할때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