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와 마이크론 협상의 공이 다시 한국으로 넘어왔다. 양사 모두 한 고비를 넘겼다는 눈치다. 매각가격은 물론 지급 방식과 고용승계 등 전반적인 매각 방안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에 도달해 지리한 협상을 매듭지었다. 물론 양해각서(MOU) 교환이 이뤄진 것도 아니며 하이닉스 채권단과 이사회의 비준도 남았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흥분할 만도 한 채권단이 뜻밖에 조용하다. 속을 들여다 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채권 회수의 길이 열렸으나 또 다른 부담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이닉스가 잔존 법인의 생존을 위해 채권단이 부채 탕감과 추가 투자를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채권단은 이 요구를 묵살해도 된다. 그러나 이 경우 협상 자체가 깨질 수 있다. 또 채권만 빼먹고 기업을 내동댕이친다는 비난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수용하자니 채권 회수 계획에 큰 차질을 빚는다. 채권단으로선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채권단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자유 의지겠지만 한 가지 잊어서는 안될 게 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마이크론과의 협상 타결을 목빠지게 기다렸다는 사실이다. 박종섭 사장의 귀국으로 마이크론이 차린 밥상이 들어왔다. ‘헐값시비’가 가시지 않고 있으나 어쨌든 마이크론으로선 최대한 양보했다는 게 하이닉스 협상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채권단도 밥상을 물릴 생각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차린 반찬을 누가 어떻게 나눠 먹느냐를 놓고 서로 보이지 않는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다. 채무자인 하이닉스도 이 자리에 앉으려 한다. 하이닉스는 소액 주주의 보호와 잔존법인 임직원의 생존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다. 반면 ‘채권 회수’라는 채권단의 명분은 다소 빛이 바래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논리는 가장 중요하기는 하나 이번 하이닉스 매각건에 단순히 적용시켜서는 곤란하다. 하이닉스도 경제외적인 논리로 탄생한 기업이 아닌가.
채권단이 채권 회수가 급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곤란하다. 하이닉스 역시 협상 타결을 빌미로 무리하게 요구해선 안된다. 서로 양보하는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어렵게 차려진 밥상을 깨선 안된다.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바로 쌈지 돈을 투자한 소액주주와 기술 개발로 밤새운 하이닉스 임직원들이 그 상을 떠받드는 다리이기 때문이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