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성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choisung21@hanmail.net
무엇보다 먼저 막대한 인명피해를 초래한 지난 9·11 뉴욕 테러사건에 대해 부시 대통령과 미국민에게 뒤늦게나마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실 동족상잔의 전쟁을 경험한 한국민에게 ‘전쟁과 평화’는 참으로 절박한 생존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뉴욕에서 일어난 ‘반문명적인 테러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고 마땅히 지구상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연유로 ‘반테러전쟁’을 승전으로 매듭지은 대통령께서 올 들어 첫 해외순방지로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3국을 선택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통령께서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는 ‘냉전의 마지막 고도’라 불리울 만큼 삭막한 분쟁과 갈등지역이자, ‘평화를 진정으로 갈망하는 외로운 섬’이었습니다. 바로 그 상징이 이번에 방문할 도라산역입니다. 도라산역은 남과 북을 가로막은 철조망을 걷어내고, 끊어진 철길을 이어 남북을 관통시킬 경의선 철도 연결공사의 최북단입니다. 아마도 대통령께서는 도라산역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다음과 같은 입장을 피력할 것입니다.
“미국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을 반대하지 않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 하지만 북한은 미사일을 포함한 대량 살상무기의 개발과 수출을 즉각 중단하라!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은 용납할 수 없다.”
옳은 지적입니다. 한국민 역시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정책의 진의를 하루빨리 파악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위험스러운 국가’라는 이미지를 벗고 ‘한민족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께서는 상대방의 목소리도 귀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다름 아니라 대통령께서 그토록 변화를 원하는 북한의 입장입니다. 그들은 미국에 강력히 따지고 있습니다. “대화를 하겠다고 하면서 악의 축이라고 규정한 것은 무엇인가. 이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에 선뜻 동의할 한국민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과 미국민의 평화에 대한 의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국 국민은 최근 대통령과 보좌진들의 발언에 대해 적지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요지는 바로 이러합니다.
“북한을 변화하도록 부드럽게 유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거칠게 다룰 경우 한반도는 이라크나 아프간처럼 전쟁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오늘날 북한이 겉으로는 호언장담하고 있지만 내심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체제생존에 몸부림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프간전쟁’을 계기로 미국내 군수산업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한반도 위기를 확산시키는 것은 그간의 한미 우호협력 관계를 심대히 위협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많은 국민들은 지난 94년 북한 핵위기시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공격을 검토했다는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의 의회 증언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국민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3만8000여명의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머물고 있듯이, 어떤 형태의 전쟁도 원치 않는 평화애호적인 7000만에 달하는 한겨레가 이곳에서 평화로운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모쪼록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민의 평화의지를 확인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경찰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이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깊은 우려감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리하여 도라산역의 연설이 부친인 부시 전 대통령께서 한반도의 전술핵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면서 한반도에 짙게 드리워진 냉전의 빙벽을 허물었던 그 감동적 순간을 재현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