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의료벤처 신화 `다시 한번`

 ◆김선일 한양대학교 교수 sunkim@hanyang.ac.kr

 

 최근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도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게 됐다. 벤처신화 1세대인 메디슨의 부도가 바로 그것이다. 필자는 공대를 졸업하고 70년대 말 서울대병원 의공학과에 발을 디딘 이후 25년 동안 여러 의료기기 벤처회사의 태동과 성장을 지켜봤다. 그런데 그 신화의 주인공의 몰락을 바라보면서 ‘과연 의료기기 벤처신화는 우리나라에서 꿈인가’라는 자문을 해본다.

 70년대 말 국내 대다수 병원은 미국과 유럽산 제품을 사용했다. 당시 일본산 의료기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전세계에는 일본 의료기기가 판을 치고 있다. 이는 다른 첨단산업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현상이다.

 이는 아마도 의료기기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다른 산업에 비해 의료기기의 가장 큰 특성은 다품종 소량생산이란 점이다. 대부분 의료기기는 품목이 수천가지에 달하면서 연간물량은 고작 10만대 수준이다.

 이러한 산업에 외국계 대기업은 적극 투자하고 있다. 엄청난 고부가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모든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GE의 여러 사업부 중 매출액 대비 가장 큰 순익을 내는 사업부는 바로 의료기기다.

 특히 GE 의료기사업부의 내부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른 전자사업부처럼 대규모 사업군이 아니라 소규모의 독자적인 사업군이 모인 벤처연합체의 형태를 띠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아주 유연한 세부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GE 브랜드로 뭉쳐, 세계 의료기기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이것이 메디슨 이민화 회장이 꿈꾸던 관련산업의 다각화인 ‘벤처연방제’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산업은 과연 경쟁력이 있는 것일까? 단언컨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될 것이다. 노령화가 진전될수록 삶의 질과 질병예방이 강조돼 진단기기와 재활기기의 수요는 가장 많이 증가하리라 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정보시스템과 연관된 의료기기의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사회전반적인 정보 인프라 뿐만 아니라 의료와 관련된 정보 인프라가 가장 발달된 국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대형병원뿐만 아니라 중소형병원까지 정보시스템이 구축된 나라는 그리 흔치않다.

 이러한 정보시스템과 진단시스템이 접목돼 원격 및 재택진료 등이 가장 보편화된 국가가 될수 있다. 현재도 국내 의료기기 벤처회사에서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는 각종 진단기기를 개발, 상품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산업의 전망이 밝은 이유는 정보·전자산업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특히 지식기반산업이면서 이미 많은 우수한 인력들이 대거 진출하기 때문이다.

 초음파진단기를 예로 들더라도 국내 수출품 중 반도체와 자동차를 제외하고 이만한 첨단 수출품목은 없다. 과거 10년 동안 정부의 지원 아래 연구된 많은 의료기기들이 이제 벤처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요즘은 정부와 과학계에서도 생명기술(BT)·정보기술(IT)·나노기술(NT) 등 첨단기술의 육성에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으며, 이들 기술이 융합된 것이 바로 의료기기다. 우리나라의 산업환경과 인력환경 등을 고려할 때 ‘의료기기산업’은 결코 버릴 수 없는 분야다.

 메디슨의 예는 벤처의 거품이 제거되면서 한번은 겪어야 하는 일시적인 현상이지 결코 우리기업들의 경쟁력이 없음은 아니라고 확신한다. GE·지멘스 등 다국적 거대 의료기기 회사가 메디슨을 주시하고 있음이 그 방증이 아닌가 싶다.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인 지금 의료벤처 신화 달성은 결코 꿈이 아니다. 특히 수많은 의료기기 벤처회사들이 수년 안 제2의 메디슨 신화를 창조하리라 굳게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