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정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 선임연구원
“미디어는 더이상 메시지가 아니다”라고 말한 사람은 ‘Being Digital’(1995)의 저자인 네그로 폰테다. 디지털화의 급진전으로 누가 방송사업자이고 통신사업자인지, 또 IT사업자인지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최근들어 콘텐츠 산업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콘텐츠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하는 혁신그룹은 아예 미디어가 곧 콘텐츠라고 말하기도 한다. 미디어가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라고 본다면 쾌히 ‘예’라고 수긍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산업’이라는 접미어가 따라 붙는다면 그렇다고 동의하고 싶다.
정부의 관련부처들은 콘텐츠산업을 운운하는 것 같은데, 표현방식은 제각각이다.
문화관광부는 문화콘텐츠산업(‘문화’라는 접두어는 왜 꼭 붙여야만 하는지!) 육성을, 정보통신부는 ‘그래도 디지털인데’하면서 디지털콘텐츠산업 육성을, 또 산업을 담당하는 부처인 산업자원부는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멀티미디어콘텐츠산업 지원을 정책으로 내세운다. 반가운 것은 이들 모두가 콘텐츠산업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보통신산업에서 부가가치가 네트워크에서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으며, 디지털화가 중요한 시장 동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콘텐츠만 남는다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그릇없는 내용물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미디어산업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때다. 방송·통신·IT의 융합이 일어나고 디지털미디어의 출현으로 콘텐츠 제작에서 유통·이용에 이르는 전 과정이 디지털화한다. 그러므로 미디어는 콘텐츠를 유통시키는 수단이 되고, 이러한 의미에서 맥루한이 말한 “미디어는 메시지다”에 변화가 일어난다.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직장에서는 PC와 씨름하며, 저녁에는 TV 앞에 몸을 던진다. 즉, 미디어 이용 행태는 그다지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우리의 관성(Inertia)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산업은 변화하고 있다. 기존 미디어산업은 콘텐츠 제작과 패키징을 담당하는 산업으로 이해됐지만, 융합현상이 가시화하면서 방송사업자뿐만 아니라 통신사업자도 유통을 담당하고 TV나 VTR 등으로 한정됐던 단말기도 PC와 포스트PC 등 다양한 소비자기기로 확대된다.
방송망과 통신망을 총망라한 전송망·AV기기·백색가전기기·통신기기·컴퓨터 등을 총망라한 기기, 그리고 그 속에 담을 콘텐츠가 하나로 묶여진 가치사슬이 형성되고 있으며, 그 결과 서로 응집돼 뗄 수 없었던 미디어와 콘텐츠간 분리가 진행된다.
콘텐츠산업은 유통망과 이용단말의 다원화로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하에 진화·발전하면서 모든 정보통신산업과 관계하는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콘텐츠산업의 시장 플레이어도 미디어사업자·통신사업자·컴퓨터사업자·출판업자·콘텐츠개발업자·콘텐츠유통사업자 등으로 확대된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기존의 미디어산업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기존 미디어산업은 콘텐츠의 창출·저장·조작 및 변환이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호환이 안되는 자기완결형 수직통합구조(출판·신문·비디오…)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화된 미디어가 담고 있는 콘텐츠가 유저 플랫폼을 중심으로 통합서비스되기 시작하면서 디지털미디어 가치사슬이 형성되고 다양한 유통 담당 플레이어들이 서로 경쟁하게 되며, 모든 과정에 콘텐츠산업이 관여한다.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유통망간 경쟁, 유통기기간 경쟁, 소프트웨어 표준간 경쟁, 유통 플랫폼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부품이 되는 내용물을 공급해줄 공급자인 콘텐츠사업자들이 시장에서 갖는 공급자 협상력이 점차 강해지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