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나이트메어

 ◆박재성 논설위원 jspark@etnews.co.kr

 

 하이닉스와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한 미국 마이크론의 협상은 최근 ‘타결’과 ‘재협상’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그네를 타는 듯하다.

 두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양사의 협상 초점은 인수금액 규모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었다. 줄다리기를 벌이는 것은 당연했다. 마침내 결단을 남겨둔 듯한 시점에서 하이닉스의 최고경영자는 태평양을 건너갔다가 돌아왔다. 그는 비행기 트랩에서 내리자마자 협상이 타결된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한 행동을 했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서는 마이크론 측의 세부적인 제안 내용을 문제삼아 재협상으로 기울고 있다.

 협상이 계약서에 서명만을 남겨두고 있는 듯한 분위기에서 거의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누구라도 궁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측 시각은 미국의 마이크론이 제시한 소위 독소조항이라는 제안 때문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제안이 처음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막바지에 제시됐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렇지만 하이닉스처럼 거대한 회사를 두고 협상을 벌이는 상태에서 마지막 순간에 제시조건이 크게 바뀌는 일은 드물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독소조항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그들이 소위 그런 제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것이 협상이 난항을 겪는 ‘진실’한 이유일 것이다. 그 실마리는 협상을 지켜보는 외국인의 시각에서 얻을 수 있다.

 영국의 유력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외국 업체가 한국 업체를 인수하기 위한 협상을 한마디로 ‘악몽(nightmare)’이라고 했다. 미국의 마이크론을 포함해 AIG나 포드·도이체방크 등 외국 회사가 지난 97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현대·대우 등과의 협상이 어려운 여러 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먼저 한국은 아직도 ‘은자의 나라(hermit kingdom)’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수출을 통해 세계 경제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외국 자본의 필요성을 느낀 것도 지난 97년 이후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매각자나 외국의 인수자 모두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한다.

 다음으로는 차용기술의 문제(borrowed technology)다. 한국의 기업은 그들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일본이나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사업 분야에 진출했다. 그랬으니 기업을 매각할 때 라이선스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벌구조도 문제다. 재벌은 하나의 회사를 매각하더라도 다시 복구할 수 있다. 투자가는 이것을 큰 위험으로 인식하고 있다.

 또 하나는 빚이다. 팔려고 하는 많은 기업은 지불 불능 상태다. 알려지지 않은 빚은 더 큰 문제다. 그것은 나중에 나타나고, 또 협상과정 내내 문제가 된다. 외국 투자가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전체 회사가 아니라 특정한 공장을 살 것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잘 통하지 않는다.

 좋은 정보도 부족하다. 회사를 인수한 후 손잡고 일할 만한 사람들은 감방에 가거나 도피한다. 내부관리도 부주의하고 게으르다.

 이 모든 것이 잘된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협상 과정이다. 한국의 협상가들은 종종 초보자로서 윈윈보다는 제로섬 게임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논리보다 높은 가격만 부른다.

 이처럼 외국인에게 비친 한국의 모습은 모든 기업에 전적으로 맞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 한국 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런 점들을 고치지 않는 한 당분간 외국과의 협상에서 악몽과 같은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