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이후 국내의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심각한 자금난과 경영난에 빠졌었다.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라 그만큼 충격도 컸다.
그 뒤 우리 사회에 과감한 구조조정만이 살 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뒤이어 국내 각 경제 주체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각 기업들도 회생이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구 노력을 펼쳤다. 부실을 털어내고 군살을 뺌으로써 핵심분야에 경쟁력을 집중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이를 위해 회생이 가능하고 기술력을 가진 기업들에 대해서는 일단 자금 지원을 통해 살려낸 뒤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뒷따랐다. 여기에 필요한 자금으로 구조조정기금이 조성되어 투입되었다. 다른 문제보다 자금난에 봉착해 위기에 놓였던 기업들로서는 이같은 국가의 자금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큰 힘이 됐으면 두 말할 나위 없다. 제대로 쓰이면 아주 긴요한 보약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일각에서 우려해 왔던 일이 마침내 터지고 말았다.
얼마전 국내 금융기관이 대주주인 한강구조조정기금을 편법으로 지원받은 벤처기업 대표와 지원을 대가로 금품을 챙긴 중앙부처 공무원 등이 검찰에 적발된 것이다.
한 투자자문 직원은 억대의 사례비를 받고 액정표시장치 개발 벤처기업 등이 한강구조조정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알선했다. 또 이 벤처기업의 대주주인 한 대학 교수는 자신이 개발한 LCD 특허권을 제공하는 대가로 수십 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했는데도 액정표시장치 특허권을 이 업체에 다시 매각하는 것처럼 꾸며 수억원을 횡령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공무원은 물론 디스플레이업계의 모임체인 연구조합 간부도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유감스럽지만, 이같은 사건이 비단 이번 한번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정부 관계 기관은 이 기회에 구조조정기금의 투자 과정에 비리가 없는지를 다시 한번 면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기금은 정말 꼭 투입해야 할 기업에 제대로 쓰여져야 한다.
이를 통해 해당 기업도 회생하고 국가 경제에도 다시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충원되는 막대한 구조조정기금이 한푼이라도 결코 헛되이 사용되지 않도록 앞으로 철저하게 감독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도연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