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과학기술부 연구개발기획과장 yskim@most.go.kr
며칠 전 미국의 해양대기청(NOAA)에서는 올 봄에 이상 홍수와 가뭄을 유발시키는 엘리뇨가 지난 98년에 이어 또 다시 발생할 전망이 크다고 예보했다. 나름대로 몇년 전부터 엘리뇨에 잘 대비해온 나라는 재해의 폭을 줄일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한 나라는 또 다시 쓰라린 아픔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도 여러 곳에서 봄가뭄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다.
연구개발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미래에 대비해 미리미리 연구력을 쌓은 나라는 국제경쟁에서 승부수를 띄울 수 있겠으나 그렇지 못한 나라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매번 당할 수밖에 없다.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대목이다.
우리는 1억원을 투자했으면 1억원 이상을 벌기 위해 사업도 하고 연구도 한다. 언뜻 보기에 연구는 되돌아오는 속도가 다소 더딜 수 있고 당장은 가치환산이 애매할 때도 있지만 제대로 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갖게 되면 반드시 투자 이상을 벌어들인다.
한 예로 지난 84년 VTR의 핵심부품인 헤드드럼을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데 4달러50센트를 지급했으나 연구개발을 착수한다는 소문이 나자 절반 수준인 2달러50센트로 떨어졌고 국산화가 이뤄지자 50센트로 뚝 떨어졌다.
우리의 VTR 판매량이 매년 1300만대임에 비춰 볼 때 기술개발을 하지 않았다면 5850만달러(4달러50센트×1300만대)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데 국내 개발로 650만달러(50센트×1300만대)를 수입대체시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연구개발에서는 국산화로 이어진 국내 생산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입가에서 국내 생산가를 뺀 가격차가 더 큰 의미를 준다. 따지고 보면 오히려 5200만달러(4달러×1300만대)를 더 벌어들인 것이다.
당시 연구개발에 100만달러가 사용됐다. 이를 통해 매년 5850만달러의 수입을 대체시키고, 또 실제로 5200만달러의 절감효과도 내는 만큼, 연구를 통해 최소한 매년 50배 이상의 연구효과를 얻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구는 연구를 한다는 소문만으로도 우리의 대외 가격협상 능력을 크게 높여 수입가격도 하락시키고 있다. 어느 산업도 이만한 부가가치를 낼 수 없다.
이렇게 기술개발이 반드시 투자액 이상의 이익을 되돌려준다는 사례들이 나오면서 국내 기업들의 마인드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설비투자 축소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연구개발투자만은 확대한다는 것이 국내 기업들의 올해 경영구상이다. 기업 총수들도 경기부진에 관계없이 ‘다른 것은 다 줄여도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은 깎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연구개발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연구비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또 한푼도 낭비됨이 없이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연구비 지원규모에 비해 당장 나오는 결과가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해 연구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약 10조원을 투입해 상상할 수도 없었던 부문에서 5대 효자 수출품을 내고 이들이 해마다 600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촉매역할을 하며 우리 경제를 버티게 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자의 참신한 연구역량을 국가경쟁력 제고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의 연구개발(R&D) 투자를 더욱 늘려야 한다. 오늘의 R&D 투자가 많은 것 같이 보여도 신청된 과제는 보통 5대1 이상의 치열한 경쟁을 해야만 한다. 최소한 3대1 정도까지는 떨어져야 한다.
둘째 늘린 돈은 우리의 전략기술과 기초·응용연구, 그리고 초인류화 가능부문에 전략적으로 사용해 알짜기술로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부처의 R&D 지원개념과 출연연구소의 기능도 재정립돼야 한다.
셋째 훌륭한 인재는 깊이있는 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양성해야 한다. 국내 한 바이오벤처기업에서 개발한 8000만원짜리 생쥐는 누구나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도의 기술을 가진 핵심전문가만이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나친 간섭보다는 따뜻한 애정으로 과학자의 마음을 안아주고 그들이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일터를 보장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