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4위의 이동통신업체인 모빌콤의 3세대 네트워크 투자와 관련해 벌어지고 있는 현 모빌콤 경영진과 프랑스텔레콤간의 투자분쟁이 자칫 법정소송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이에 따라 최악의 경우 모빌콤의 도산과 그에 따른 독일3세대 이동통신 시장의 혼란 등 파란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99년 모빌콤은 당시 80억유로를 상회하던 독일의 3세대 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프랑스텔레콤과 포괄적인 투자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프랑스텔레콤이 모빌콤에 47억유로에 달하는 은행 융자를 알선하고 향후3세대 네트워크 투자자금을 조달해주는 대신 모빌콤의 지분 28.5%를 즉시 인수하고 나머지 지분도 오는 2005년 3세대 이동통신 시장이 출범하는 대로 모두 인수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주된 협정 내용이었다.
또한 프랑스텔레콤의 잔여 지분 인수가 끝나기 전에 투자와 관련된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현 모빌콤 주주들이 전체 지분의 33%를 강제로 프랑스텔레콤에 매각할 수 있다는 점에도 합의가 있었다.
이러한 투자협정을 토대로 프랑스텔레콤은 실질적으로 독일의 3세대 이동통신 사업권을 거머쥐게 되었고 모빌콤은 프랑스텔레콤의 자금력을 무기로 새로운 시장의 유망주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유럽통신 시장이 침체하면서 이 투자협정은 프랑스텔레콤과 모빌콤 모두에 뜨거운 감자로 변했다.
사건의 발단은 올해 초 프랑스텔레콤이 모빌콤의 대규모 투자계획 축소를 요구한 데서 비롯됐다. 10억유로가 훨씬 넘는 3세대 이동통신 네트워크 구축비용을 수억유로 이하로 줄이라는 것이 프랑스텔레콤의 요구 사항이었다. 650억유로에 달하는 과도한 부채로 고전하고 있는 프랑스텔레콤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모빌콤의 경영진은 이러한 요청에 대해 냉담했다. 게하르트 슈미트 모빌콤 회장이 지난 1월말 독일의 금융 분석가들에게 기존의 투자계획을 수정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발표한 것이다.
더욱이 그는 프랑스텔레콤을 향해 지난 99년 체결한 투자자금 조달협정을 준수하라고 다그쳤다. 이에 대해 프랑스텔레콤은 자사가 파견한 모빌콤의 이사회 멤버를 사직시키는 등 대항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독일 금융시장에서 슈미트 회장의 부인이 그간 모빌콤의 주식 5%를 은밀히 매집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이 과정에서 모빌콤의 자금 일부가 슈미트 회장 부인 명의의 회사로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텔레콤은 현 모빌콤의 지배주주인 슈미트 회장을 경영일선에서 축출하는 것은 물론 지난 99년 체결한 투자협정내용 또한 완전히 백지화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이번 사건으로 모빌콤 지배주주들의 부당행위가 드러난 만큼 그들과 체결한 투자협정 또한 원인무효라는 주장이다. 프랑스텔레콤은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슈미트 회장 부인의 주식거래 사건을 법정소송으로 끌고 가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독일 금융시장에서는 모빌콤의 존립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프랑스텔레콤이 발을 뺄 경우 모빌콤의 신규 투자계획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오는 7월 만기 도래하는 47억유로의 은행대부자금을 이 회사가 어떻게 상환할지가 큰 걱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제가 확대되자 독일 당국은 사태수습에 고심하는 모습이다. 우선 독일 증권 당국은 슈미트 회장 부인의 모빌콤 주식매집과 관련해 그 어떤 불법행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그녀의 주식매집은 모빌콤 대리점들을 대상으로 스톡옵션을 부여해 영업 활성화를 꾀할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며, 모빌콤이 그녀 명의의 회사에 자금을 지급한 것도 이러한 스톡옵션의 수수료였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프랑스 금융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다. 슈미트 회장이 모빌콤의 투자계획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프랑스텔레콤과의 분쟁을 유도했고, 이는 기존의 협정 내용을 이용해 프랑스텔레콤으로 하여금 자신의 주식을 비싼 값에 매입하도록 강요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이다. 최근 슈미트 회장 부인의 주식매집도 차후의 대규모 주식 처분을 위한 사전 주가 올리기에 그 목적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처럼 확대되고 있는 모빌콤의 투자분쟁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지어질지 경우에 따라서는 독일, 프랑스 양국 통신업계 전반에 커다란 파장을 드리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