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한미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김연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serikyc@seri21.org

 

 한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북한은 한미 양국의 대화를 통한 대량 살상무기 해결방식을 거부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동시에 핵과 미사일 문제 등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분명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사실 북미 양국은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시기의 북미협상 성과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그것이 아마도 북한이 보인 반응을 해석하는 데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앞으로 어떤 전략을 취할 것인가.

 사실 부시의 대북정책 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북미협상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북한 입장에서 ‘벼랑 끝 전술’을 반복하기도 어렵다. 북한은 내부결속을 다지면서 남북관계의 활성화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난 99년부터 북한이 보여준 나름대로의 변화를 읽을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대화 추진, 남북 정상회담,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과 러시아 방문 등이 있었다. 그렇지만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제환경이 변하고 북한의 변화에 대한 소극성으로 가시적 성과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2001년은 남북관계 신뢰구조의 불안정성을 확인시켜준 한 해였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무시정책(benign neglect)과 반테러 전쟁은 북미대화를 중단시켰고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발했다.

 북한은 어떤가.

 북한의 정책변화는 체제유지를 근간으로 하는 개선정책으로 외부세계가 기대하는 개혁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음을 확인시켜주었으며 결과적으로 대북정책 기본전제(북한 변화론)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남한 국내적으로도 대북정책 추진의 지지 기반이 약화됨으로써 대북협상 수단은 극도로 축소된 상태다.

 북미 관계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첫째, 남은 1년 동안 남북관계를 안정적인 제도화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우선 군사적 신뢰구축이 필요하다. 경의선 연결,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육로관광 실현, 임진강 수해방지 대책 등 모든 주요 협력사업은 군사실무회담의 성과가 있어야 본격적인 진행이 가능하다. 또 남한 내부에서 대북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행사할 수 있는 지지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남북한의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현실적 조정이 필요하다. 경제협력은 상호 호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서로의 요구조건에서 지금 당장 들어줄 수 있는 것과 향후 시간을 두고 논의해야 하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금강산 사업의 경우 북한은 관광 활성화를 위한 특구 지정과 환경정비를 할 필요가 있고, 남북한은 좀더 경제적인 관광을 위한 육로연결사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셋째, 남북문제의 탈정치화가 2002년 최대의 과제다. 올해는 선거의 해기 때문에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측 내부의 공감대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북 지원과 공적투자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퍼주기론’과 같은 정치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비난은 민족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그만두어야 한다. 물론 소모적인 이념논란도 피해야 한다.

 2002년은 남북관계의 다지기 전략이 필요한 때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단계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안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산가족 만남의 제도화, 경의선 연결사업 완공, 경협관련 합의서의 세부이행 지침 합의 등이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개성공단사업은 좀더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 위탁가공단지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기예방정책도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유예를 2003년까지 선언한 바 있고 94년 제네바 합의는 경수로의 완공시점을 2003년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북미 미사일 협상은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경수로 공사 역시 현재 본공사 진척률이 15%에 불과하다. 그리고 올해 남한에는 선거가 있다. 한반도 정세는 80년대 후반 탈냉전 이후 가장 중요한 격변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남북한이 직시해야 하며 위기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관계개선 전략을 시도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