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바람직한 勞經 관계

 ◆LG전자 인사노경팀장 한만진 상무 hanman07@lge.com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를 통해 미국과 중국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한국 남자 선수들을 보며 세계 경제에서 한국의 위상을 떠올렸다면 기업의 경영자이기에 느끼는 직업병적인 발상일까.

 아시아의 총체적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왔고, 최근에는 가속도까지 붙어 가히 위협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중국은 세계 초일류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으며 중국 시장에서의 성패가 결국 기업의 존망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을 정도에 이르렀다.

 거대시장으로서 중국이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중저가의 범용기술을 바탕으로 한 생산품으로는 장기적으로 경쟁우위에 설 수 없다. 따라서 세계 수준의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생산분야의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한다. 생산의 경쟁력에 생각이 미치면 중국의 급성장이 단순히 경제나 경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노경관계 측면에서 심각하게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변수라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제품과 기술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수익체질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노경관계의 안정과 노경간의 협력이 없다면 생산성 향상과 품질 혁신은 그저 공허한 구호며 모래성 쌓기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경 차원에서는 유연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발전시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금부터라도 기술 경쟁력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인식하고 노경 공동의 대응에 경주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LG전자는 최근 타결한 2002년 임단협을 통해 ‘세계 속의 1등 노경, 1등 LG 실행 선언문’을 채택하며 ‘노경 R&D 인센티브’를 운영하기로 결의했다. 연구개발 인력의 사기 진작과 효율성 제고를 위해 성과급 재원의 일부를 활용해 차별화된 기술개발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종전과 마찬가지로 분배문제가 우선이고 생산은 나중 문제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접근방식으로는 급변하는 환경을 극복할 수 없다. 집안 살림의 예만 들어보더라도 우리가 저축을 할 때는 미리 일정 금액을 떼어놓고 지출계획을 짜는 것이지 쓸 것 다 쓰고 남는 돈을 저금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노경간의 공동 노력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경영실적이 호전됐다면 마땅히 경영성과를 배분해 보람을 나누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선 경쟁력 확보, 후 성과보상의 논리에는 투명경영과 신뢰경영이 전제돼야 한다. 경영정보를 정확하게 공유하는 것은 물론 문제해결 과정에 노동조합과 전 구성원이 동참해야만 성과주의는 심화·발전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소신있고 용기있는 결단에 대해 미래지향적 관점에 기초한 장기적 투자로 이해하고 나중에 반드시 투자에 대한 성과를 공유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가시적 실천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LG전자가 선 경쟁력 확보, 후 성과보상을 기조로 해 올해 임단협을 타결하게 된 데는 지난 1월말에 있었던 노경합동 중국연수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사업문화단위(CU) 노경대표 34명이 중국을 방문해 중국의 급성장이 노경 차원에서 갖는 의미와 시사점에 대해 몸소 체험함으로써 중국 기업의 거센 도전을 극복하고 한국 기업이 국제 사회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경협력을 바탕으로 한 원가경쟁력 확보 및 기술·제품 경쟁력 강화가 관건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했던 것이다.

 지금쯤 냉정하게 한 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 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고 있는 나라와 기업 가운데 노경 갈등이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는 곳이 한국 이외에 또 어디 있는지…. 이제 노경협력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경쟁력이 될 수 있고, 독특한 노경문화를 하나의 기업문화로 승화시킨다면 다른 회사에서 모방하거나 흉내낼 수 없는 경영의 핵심역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다. 우리 모두 우물에서 뛰어나와 넓은 하늘을 있는 그대로 보고 함께 목표를 정해 다 함께 한 반향으로 뛰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