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지영 비스코 대표 jylee@bisco.co.kr
지난해말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출시돼 1개월만에 전세계 판매량 100만장을 돌파한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이라는 PC게임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서도 출시된 이 게임의 패키지 뒷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여러 관련 회사의 로고와 트레이드마크가 나란히 표기돼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id소프트 게임’이라는 표기와 로고가 먼저 눈에 띄고 다음으로 ‘제작-액티비전’ ‘개발-그레이매터’ ‘멀티플레이 개발-너브소프트웨어’ 그리고 ‘동영상 제작-블러’라는 표시가 순서대로 나열돼 있다.
일반 소비자라면 무심히 지나칠 수 있을 이 로고들은 게임사업을 하는 경영자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 게임산업이 보여주는 관록과 파워를 여실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게임 개발을 중심으로 전문화돼 있는 미국 게임산업의 분업구조다.
동영상제작사·싱글플레이개발사·멀티플레이개발사와 이들의 개발상황, 자금과 소요자원관리 등을 책임지는 제작사가 각자의 역할을 전문적으로 이행하고 있다.
각 회사가 맡고 있는 분야는 게임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어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전문 영역들이다. 이런 개별 영역들이 하나의 게임에 녹아들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울펜슈타인’의 각 영역은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면서 전세계 게이머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전문화가 가져 오는 효율성의 힘이다.
일괄 개발단계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파트너들이 고유의 영역에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개발의 질적 수준이 자연히 높아지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힘이 하나의 개발 프로젝트로 집중돼 단순한 병렬적인 조합이 아니라 시너지효과로 이끌어내는 협업의 코드를 명확히 갖고 있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한국의 게임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비스코가 출발한 10여년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대규모 자금이 시장에 유입되고 기획·개발능력을 갖춘 고급인력이 투입되며 정부의 지원이 강화되고 있다.
세계시장을 목표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한국의 게임업계도 이제 전문화와 협업이라는 화두를 집중적으로 생각해 봐야 할때가 아닌가 싶다.
단순히 한 업체가 게임을 개발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
이미 몇년전부터 미국의 선진 게임업계를 중심으로 각 영역의 세분화가 이루어졌고 그 효과는 판매량을 통해 증명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쯤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한 방법으로 협업체제를 적용,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달라진 환경을 활용해 세계시장을 정면으로 돌파해 보고자 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기획되고 전문성을 가진 국내 개발사와 제작사들이 명확한 역할 분담 및 협업으로 진행한다면 세계시장 제패도 요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짧은 시간동안 세계에 각인된 한국 게임산업의 저력과 발전속도를 볼 때 전문화와 협업을 통한 경쟁력 제고는 세계시장 진출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올해는 한국의 게임업계에서 의지와 자신감,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여유를 갖고 이러한 분위기를 도모하는 여러 프로그램과 컨벤션을 통해 대승적으로 고민하는 성숙한 시도가 많은 한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