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은 전반적인 경기 불황에 시달렸음에도 비디오 콘솔게임 시장만은 큰 폭으로 성장했다.
시장조사기관인 NPD일렉트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비디오 콘솔게임 시장은 총 94억달러로 전년의 69억달러에 비해 무려 36% 성장했다. 특히 이는 지난해 영화산업 규모 84억달러보다 10억달러가 많다. 비디오 콘솔게임이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산업을 제치고 사상 처음으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최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태평양 건너편에 위치한 한국에서도 콘솔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한국법인인 SCEK가 한국에서 PS2 게임기의 판매를 시작하면서 때늦은 바람이 일고 있는 것.
당초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에 이미 50만대 정도의 PS 게임기가 유통되고 있어 SCEK의 한국판 PS 게임기 판매는 별다른 충격을 더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제품 출시 보름여 만에 SCEK가 미리 준비한 10만여대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타이틀 판매는 더욱 활기를 띠어 제품별로 2만개에서 3만개 정도씩 팔려 나갔다. 일반적인 PC게임 타이틀이 1만장 이상 팔리면서 히트작 소리를 듣는 점을 감안하면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린 셈이다.
한국에서 비디오 콘솔게임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은 당연히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뒷맛이 쓰다. PS 게임기와 타이틀 판매로 돈을 벌어들인 것은 하나같이 일본과 미국 게임 메이저업체의 현지법인이기 때문이다. 예컨데 소니의 현지 법인인 SCEK, 일본 캡콤의 한국법인 코코캡콤, 코에이코리아, EA코리아 등이 한국에서 불고 있는 콘솔게임 열풍의 최대 수혜업체다. 엔씨소프트·한빛소프트·소프트맥스·위자드소프트 등 한국의 게임업체는 그 과실을 전혀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비틀어진 데는 소니의 폐쇄적인 정책과 한국 업체의 준비 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특히 전세계적으로 200억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콘솔게임 시장을 수수방관해온 한국 업체들은 뼈아픈 반성을 해야 한다.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을 막겠다는 정책을 내세우면서 한국에서 비디오 콘솔게임이 싹 틔울 기회조차 없애 버린 정부도 책임이 크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X박스가 남아 있다. 더욱이 이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선발주자인 소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개방정책을 펼칠 방침이어서 한국 업체에는 절호의 기회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확정하지 않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 및 타이틀을 직배하는 소니와 달리 간접배급의 형태를 취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업체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과실을 딸 수 있는 기회다.
PS2는 놓쳤지만 여름에 또 한바탕 불어닥칠 X박스 열풍에서는 한국 업체가 최대 수혜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한국 업체에 파격적으로 유리한 개방정책을 발표해야 함은 물론 한국 업체가 그동안 비밀리에 준비해온 X박스용 비밀병기를 꺼내놔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조만간 한국 내 사업계획을 확정한다니 일단은 기대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