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와 래리 엘리슨은 알아도 스티브 밀스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 2위 소프트웨어 회사 ‘IBM 소프트웨어 그룹’을 이끌고 있는 수석 부사장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과 오라클의 엘리슨 CEO가 소프트웨어 전문업체의 총수로 집중 조명을 받는 동안에 ‘빅 블루’는 소리없이 10여년 전에 잃었던 시장을 되찾았다.
시장조사회사 기가인포메이션 그룹 테릴린 팔란카는 “IBM은 과거 오랫동안 독보적 소프트웨어 업체였으나 자만에 빠져 안주하는 사이 다른 업체가 시장을 잠식했다”면서 “하지만 이제 IBM 소프트웨어사업부는 예전과 달라졌다. IBM은 이 그룹의 변모로 소프트웨어사업에서 재기했다”고 진단했다.
IBM 소프트웨어 부문은 2001회계연도 매출액이 129억달러로 MS의 293억달러에 뒤졌으나 오라클의 109억달러를 웃돌았다. 이 사업체는 베이 지역에서 40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지난 한해동안 500개의 특허 기술을 따냈다.
IBM 경쟁사들은 IBM 소프트웨어사업이 중흥되더라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라클의 켄 제이콥스 제품전략 담당 부사장은 “IBM의 연구와 개발 능력은 높이 평가하지만 우리처럼 빠르게 혁신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IBM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소프트웨어 분야가 온라인 판매, 병원 환자 기록 등 여러가지 데이터를 저장하고 분류하는 프로그램인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시장이다. 시장규모가 연간 90억달러에 달하는 데이터베이스 사업은 신생업체가 대거 온라인에 진출하던 닷컴 호황기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대부분 분석가는 데이터베이스 시장이 올해는 전년과 같거나 약간 줄어들 것이나 내년에는 경제가 회복되면서 신규 데이터베이스 구매가 급증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2000년 IBM의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시장 순위는 오라클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기가인포메이션 그룹의 팔란카 분석가는 수개월내 공개될 2001년 실적에서는 IBM이 데이터베이스에서 오라클을 제치는 것은 물론 기업 전자상거래 등 웹거래를 처리하는 애플리케이션 서버시장에서도 선두업체인 새너제이의 BEA시스템스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칼 올로프슨은 “오라클의 라이선스 매출이 서버부문에서 감소한 반면 IBM은 데이터 관리 소프트웨어에서 괄목할 성장을 거두었다”며 “이는 IBM의 전략이 맞아 떨어지고 오라클이 공략하지 못한 고객을 잡는 데에 성공하고 있다는 반증이다”고 평가했다.
IBM은 지난 1일 샘 팔미사나가 전설적 경영자 루이 거스너 CEO 후임으로 새 CEO로 취임하면서 새 시대를 맞이했다. IBM은 앞으로 데이터베이스 사업의 우위를 최대한 살려 나간다는 전략이다.
밀스 수석 부사장은 최근 뉴욕에서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힘써왔으나 세계가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IBM이 대형 하드웨어나 서비스 사업으로는 잘 알려져 있으나 본사가 실리콘밸리에 있지 않은 탓으로 IBM 로고만으로는 우리가 소프트웨어 회사인지 잘 알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경쟁사들은 이에 맞서 IBM의 재부상을 애써 과소 평가하고 있다. 오라클은 IBM이 구형의 메인프레임 기기용 데이터베이스에는 강하지만 데이터베이스 플랫폼인 유닉스 경쟁에서는 자사에 훨씬 뒤진다며 깎아내렸다. 가트너에 따르면 오라클은 이 시장의 66.2%를 차지해 14.4%의 IBM을 압도하고 있다.
오라클의 켄 제이콥스 제품전략 담당 부사장은 “IBM은 판매 실적에 많은 메인프레임 기술까지 계산에 넣었으니 이는 데이터베이스 비즈니스의 핵심과는 거리가 있다”고 꼬집었다.
IBM이 확보한 시장은 ‘여러 조각을 꿰어 맞춘 것같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오라클은 IBM이 지난 해 10억달러를 들여 인포믹스의 데이터베이스 자산을 인수한 것은 순전히 시장 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이콥스 오라클 부사장에 따르면 인포믹스의 고객 10만명 중 2000명 정도가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로 옮기는 데 이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았다. 밀스 IBM 소프트웨어 그룹 부사장은 이같은 주장은 ‘날조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분석가들은 밀스 부사장과 자넷 퍼나 IBM 데이터관리 그룹 전무를 오라클 등과의 시장 쟁탈전을 가열시킨 핵심 인물로 꼽았다. 팔란카 기가인포메이션 그룹 분석가는 “두 사람이 ‘느린 거인’으로 묘사되는 IBM 환경에서 직원수 3만5000명의 소프트웨어 그룹에 진취적인 기업문화를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IBM 소프트웨어 그룹의 부상은 여기다 IBM이 그 동안 수십억 달러를 투입한 소프트웨어 연구개발의 결실을 거두어들이고 있는 게 큰 몫을 했다.
세너제이에 있는 IBM의 실리콘밸리 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은 고객의 전자상거래 시스템 성능 개선을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 작업에서 태동한 ‘오니즈 기술’이 1년 전 IBM의 웹스피어 애플리케이션 서버의 일부로 출시되기 시작했다. ‘웹스피어 스튜디오 페이지 디테일러’는 고객이 자신의 시스템 고장을 점검하도록 한다. 웹 애플리케이션 서버는 상이한 업체나 동일업체내 부서간 인터넷을 통해 소프트웨어를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네트워킹 장비다.
IBM 경쟁사는 “IBM의 혁신 제품이라는 게 실제로는 복잡한 소프트웨어 집합에 불과하며 소프트웨어 전개 및 통합을 지원하는 연간 380억달러 규모의 서비스 사업 매출을 올리는 수단일 뿐”이라고 혹평한다.
베리 고프 MS 엔터프라이즈 부문 그룹 책임자는 그 사례로 IBM이 로터스 협업 및 e메일 소프트웨어를 웹스피어 제품에 통합시킨 것을 꼽았다. 그는 “로터스가 오랫동안 영화를 누린 것은 설치와 운영이 수월했기 때문이었다”며 “로터스를 해체해 웹스피어에 합침으로써 로터스의 간편함이 없어지고 웹스피어를 복잡하기만 한 기술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로프슨 IDC 분석가는 “중소업체 중 프로그램, 하드웨어, 컨설팅을 합친 원스톱 구매를 원하는 업체가 늘어나 IBM 소프트웨어 사업에 힘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프라수나 도나둘라는 건강보험 미적용 의료제품 판매업체인 카이저퍼머넌트 분사 기업으로 온라인 건강의료 제품 및 서비스업체인 케어터치의 수석 CTO다. 그가 IBM, 오라클 등 관련 업체로부터 데이터베이스와 애플리케이션 서버를 구매할 때 따지는 여러 요소 중 하나는 원스톱 구매다.
도나둘라 CTO는 “IBM은 모든 소프트웨어, 서버, 유지 서비스를 제공해 한 가지 접촉창구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며 “여러 업체를 상대해보니 문제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한 가지 불만은 IBM의 DB2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를 잘 아는 데이터베이스 관리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점이다. 그는 “오라클은 많은 이들이 제품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이런 어려움은 없다”고 덧붙였다.
<박공식기자 kspark@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