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진 KT 통신망연구소 통신통합연구실장
전세계의 이목을 브란덴부르크 광장으로 집중시켰던 독일 통일의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지도 어언 10여년이 지났다.
우리 민족에게도 통일의 염원을 간절하게 했던 세기적 사건이 일어난 지 9년 만에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김정일 위원장과의 만남을 이루어냈다. 이러한 만남은 우리들에게 통일이 곧 이루어질 듯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6·15 공동선언의 후속조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의 큰 기대를 다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번 다가온 봄날은 꽃샘추위가 온다고 해서 물러가지 않듯이 남북한간의 화해 분위기는 계속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렇듯 남북한간의 관계가 약간의 휴지기를 맞을 때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하여 전력을 점검하고 전략을 검토하는 자세로 남북통일에 대비한 우리의 준비사항을 종합적으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북한은 당을 중심으로 대남교섭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데 비해 남한에서는 갑작스러운 남북한간의 화해 분위기에 휩싸여 무계획하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대북한 교류를 추진한 것은 아닌지, 사회의 각 분야가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서두르지는 않았는지 등을 이 기회에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만약 현재와 같이 사회 각 분야에서 무계획하게 대북한 접근을 하게 된다면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고, 이는 남한의 기업·단체 등이 계속적인 노력보다는 바로 실망하고 포기하게 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류를 추진하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북한이 남한을 불신하게 되어 남북간 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얼마 전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주관 아래 관련 국책연구소들을 참여시켜 분야별 남북한 교류 및 통일에 대비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는 보도가 있었다. 늦었지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그나마 중단없이 왕성하게 추진하고 있는 교류분야 가운데 하나가 IT분야다. 그 이유는 북한이 IT산업의 현대화를 통한 경제 선진국으로의 단번 도약을 도모하고, 세계적인 IT선진국으로서 한국이 왕성한 해외진출을 추진하는 입장이 일치되었기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IT교류의 중심은 정부나 사회단체보다는 기업들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아직도 대다수가 확실한 수익모델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지속적인 추진을 재검토하는 곳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또 북한의 한정된 IT인력으로는 남측의 요구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대북교류 방식 역시 아직도 체계화된 교류보다는 중국 등에 있는 중개인을 활용하는 초기의 접근방법들을 대부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는 IT분야도 체계화된 대북한 접근방법과 사업전략 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는 남북이 함께 수익을 창출하는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 남북 양측의 IT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공동기술·공동표준·공동연구 등의 기반 구축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반 구축은 정부·기업·관련연구소 등이 모두 함께 나서야 한다. 특히 남북한 공동표준의 사용은 향후 정보통신 분야의 발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폭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위하여 KDI의 종합계획 수립과는 별도로 관계기관·기업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할 수 있는 연구팀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협의회의 구성이나 이미 구성된 기구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계획들은 한번 작성되면 계속 활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환경변화에 맞춰 계속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또 내용도 해당 분야의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 각 분야가 연결되어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chaoskjj@k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