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한컴과 메디슨

◆ 윤원창 IT담당부국장

 

 ‘메디슨’과 ‘한글과컴퓨터’. 두 회사는 사업 분야가 독특하고 가는 길이 전혀 다르지만 걸어온 길을 조금 주목해 보면 몇 가지 점에서 유사성과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선 두 회사는 모두 창안품 하나로 성공해 한때 한국 벤처기업을 대표했을 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한글과컴퓨터는 컴퓨터가 생소했던 80년대 한글의 문자 특성을 정확하게 살린 ‘아래아한글’이란 창안품 하나로 성공한 간판 벤처기업이다. 메디슨은 80년대 초 병원에서 귀족 대우를 받았던 초음파 진단기를 필수품화하는 등 의료 현대화에 끼친 공로가 크다. 특히 벤처기업으로 세계 처음으로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 세계 유수기업과 어깨를 겨루는 등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한 한국의 대표기업임에 틀림없다.

두 기업의 차이점이라면 한글과컴퓨터는 한국을 벗어나지 않은 ‘국내용’인 반면 메디슨은 세계시장이 활동무대였다는 점이다.

 또 두 회사의 몰락 원인도 엇비슷하다. 한글과컴퓨터가 몰락한 것은 불법복제 같은 외부적 요인도 간과할 수 없지만 국내시장에서 초반의 성공과 유명세에 안주한 나머지 정확한 시장예측과 새로운 제품개발에 소홀한 게 더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메디슨도 벤처정신에 걸맞게 새로운 기술과 상품 개발보다는 선단식 문어발 경영과 차입경영이라는 잘못된 재벌 흉내내기로 화를 자초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때 재벌체제의 대안이라고까지 추켜세워지던 벤처기업의 선두주자가 재벌체제를 답습하다 무너지고 말았으니 역설치고는 엄청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두 회사의 회생과정은 어떤가. 메디슨이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가 회생절차를 밟게 된 계기는 의공학계·의료기기업계는 물론 메디슨이 위치한 강원도 지역 기업들의 여론형성이었다. 이들은 메디슨이라는 우수기업이 가진 유무형의 자산을 재활용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내세워 금융지원 등을 통해 자력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지멘스·제너럴일렉트릭(GE) 등 세계 유수기업들과 시장경쟁에 나서 의료기기 수출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기업을 해외에 매각하거나 청산할 경우 우리 산업계가 입게 될 손실이 크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메디슨 회생 여론은 4년 전 벌어졌던 아래아한글 살리기 범국민 운동과 유사하다. 지난 98년 영업부진으로 극심한 자금난을 겪다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넘어갈 뻔했던 한글과컴퓨터도 아래아한글이 갖는 상징성과 그에 따른 국민적 열망이 절대적으로 작용해 회생했다. 당시 여론를 형성하는 데는 벤처기업협회와 한글학회 등 20여개 단체들이 구성한 한글살리기운동본부의 활동이 큰 역할을 했다. 메디슨이나 한글과컴퓨터의 회생은 “시장경제원리보다는 문화원리가, 생산자원리보다는 소비자원리가 앞선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

 하지만 4년간의 터울을 두고 발생한 두 회사의 몰락과 회생과정에서 묘한 아이러니가 발견된다. 한글과컴퓨터 회생과정에 메디슨이 확보한 한컴주식이 결국 메디슨 붕괴의 단초가 됐기 때문이다. 메디슨은 지난 98년 한글과컴퓨터 주식을 싼 값에 매입, 벤처 열풍을 타고 주가가 오르면서 상당한 평가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고 이를 배경으로 ‘벤처연방제’를 내세워 본격적인 벤처투자에 나섰다.

 이로 인해 메디슨은 한때 계열사가 23개로 늘어날 정도로 거대한 벤처군단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벤처거품론과 수익모델론이 적극 제기되고 벤처열풍이 식어가면서 주가가 하락, 메디슨은 주식 매각에 따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신용등급마저 떨어져 결국 단기차입에 의존해 몰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론이지만 한글과컴퓨터 살리기가 메디슨 몰락의 빌미를 만드는 자충수(自充手)가 된 것이다.

 이처럼 메디슨과 한글과컴퓨터의 성장과 몰락-회생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 오늘날 기업이 지켜야 할 원칙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기업은 성장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사회를 활성화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러나 기업 성장에도 원칙이 있으며, 빠르고 훌륭하게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이런 차이들이 모여 1등기업과 파산기업을 가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기업인들의 자세 전환이 선결과제다.

 진정한 벤처기업은 여건이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빛이 난다. 지금도 연구실과 공장에서 날밤을 새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에 우리의 벤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

   wcyo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