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웨어 유병훈 사장
얼마 전 다른 업체 사람들과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런데 동행한 직원이 필기도구를 갖고 가지 않는 것 같아 내심 못마땅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미팅 시간이 되자 그 직원은 가슴속에서 개인휴대단말기(PDA)를 꺼내 들고 회의내용을 열심히 메모하는 것이 아닌가. 돌아오는 길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친구는 PDA로 전화는 물론 일정관리, 음악감상, e메일 확인과 함께 전자책(e북)도 본다고 한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PC가 고장날까봐 가슴을 졸이며 ‘더블클릭’을 연습하는 선배가 있는데, 그 직원에게는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인터넷도 답답한 모양이다. 격세지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수년 전부터 포스트PC라는 단어가 매체를 통해 소개됐음에도 불구하고 포스트PC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포스트PC는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이어서 컴퓨터의 기능을 담당할 차세대 정보기기’로 정의할 수 있으며 정보기기라는 개념에 걸맞게 인터넷 접속기능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포스트PC의 개념은 종전에는 단순한 개인용 정보기기에 머물렀으나 지금은 정보가전기기 즉, TV나 냉장고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가전기기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책상에 앉아 덩치 큰 PC의 전원을 켜고 부팅되는 시간을 기다려 인터넷에 접속하는 과정은 사용자에게 늘 제약과 부담이 되어 왔고, 비싼 가격과 사용하기 어려운 기기라는 인식 때문에 PC는 많은 정보소외계층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포스트PC 시대에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접속해 정보를 탐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포스트PC에 대한 수요는 인터넷 이용환경의 확대와 다양화로 크게 증가하면서 연평균 43%의 고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IDC는 오는 2005년에는 포스트PC의 세계시장이 444억달러로 급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물론 포스트PC가 일반 PC를 대체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완전한 대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스트PC를 이동전화같은 필수품으로 인식하고 사용하는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디스플레이 등 우수한 핵심부품과 잘 구축된 관련 인프라는 물론, 포스트PC에서 사용자가 간편하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내장형 브라우저와 관련된 기반기술도 가지고 있어 포스트PC산업을 발전시키고 주도할 수 있는 여러가지 여건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 때문인지 세계는 포스트PC의 시험무대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지역을 지목한다.
하지만 포스트PC산업의 현실은 성장 초기단계에 있다. 그것도 하드웨어의 생산이 주류를 이루는 실정이다. 대부분이 개발 및 사업초기이거나 시장환경의 미성숙, 과당경쟁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포스트PC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도스(DOS) 운용체계를 사용하던 때를 생각해 보자. 키보드를 통해 어려운 명령어를 입력해야 하는 과정은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되는 데 많은 걸림돌이 되어 왔다. 하지만 윈도가 보편화되면서 컴퓨터 사용은 훨씬 쉽고 친숙해졌다. 포스트PC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포스트PC의 대중화는 물론 포스트PC산업 자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응용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
기존 PC산업에서 우리는 하드웨어와 부품의 생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성장을 거듭했지만 부가가치가 높은 소프트웨어 분야는 거의 외국업체가 시장을 독식하고 표준화를 주도해 왔다. 이러한 양상은 기술종속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왔으며 이것은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발전에 많은 걸림돌이 되어 왔다.
품질 좋은 하드웨어의 생산은 물론 포스트PC를 위한 내장형(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야도 함께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야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국제경쟁력을 보유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특히 내장형 브라우저와 같은 핵심기술에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기술을 발전시키고 선점하는 것이 국제무대에서 포스트PC산업을 주도할 수 있는 진정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