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반도체산업협회(SIA)가 그동안 논쟁돼 온 반도체 생산작업과 암 발생의 상관관계에 관한 장기적 대규모 연구에 나서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생산 직원들의 건강문제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붙을 것으로 보인다. 미 반도체산업협회는 최근 그동안 독립 학술조사단에 의뢰한 관련 조사결과, 추가 조사할 필요성이 있다는 권고를 받아들여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이 조사단은 반도체 청정실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암 발생 확률을 높인다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당초 제조과정이 안전해 추가 조사가 불필요하다는 칩 업체들의 주장을 뒤집은 반박이다.
일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검토와 연구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이번 장기 연구 프로그램은 칩 업계로선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관련 학계는 칩 생산과 건강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이미 발표한 바 있고 유럽에서는 암 발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미국 반도체 업체들은 암과 칩 생산작업의 관계 가능성에 대한 연구 노력을 기피해왔다. 암에 걸린 칩 업체 생산 직원들과 가족은 물론 칩 업계를 오랫동안 비판해 온 단체들은 반도체산업협회의 이번 장기적인 연구시행 검토 결정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뒷북치기’라고 소리를 높이고 있다.
남편을 2000년 뇌암으로 50세에 떠나 보낸 코라 로운존 여사는 “협회의 연구로 우리가 겪었던 일이 다른 가족에게 발생하지 않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죽은 남편이 살아돌아오진 않는다”고 밝혔다. 그녀는 남편이 작업장의 화학물질에 대한 노출로 암에 걸렸다며 남편의 전 직장인 IBM을 상대로 소송 채비를 하고 있다.
반도체산업협회는 조사단의 보고서 전체나 조사원의 전체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협회 관계자들은 그러면서도 오히려 이 조사단의 연구 결과가 칩 생산 작업이 안전하다는 확신을 시사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새너제이에 있는 반도체산업협회의 조지 스칼리스 회장은 “반도체 업계는 어떤 산업보다도 가장 안전하고 가장 건강한 작업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조사단은 협회의 의뢰를 받아 1년 동안 반도체 생산 작업장을 방문하고 관련 연구자료를 검토한 뒤 협회에 전현직 작업자들에 대한 대규모 연구에 나설 것을 검토해달라고 제안했다. 조사단원이었던 칼 켈시 하버드 대학 암 생물학 및 환경건강학 교수는 “이번 장기적인 연구 시행 검토 결정은 책임있는 선택”이라며 “업계가 마침내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칩 공장에서 사용되는 화학 혼합물과 암의 상관관계 여부는 해묵은 논란거리였다. 비소, 카드뮴, 납, 벤젠, 염산 등 수십가지 화학물질이 칩의 실리콘 층을 고도의 독성물질에 노출시켜야 하는 칩 제조과정에 사용되고 있다. 칩 제조실이 청정실이라고 불려지고 있으나 이는 먼지가 없다는 뜻이지 독성 물질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기화된 화학 물질은 공기 재활용 장치를 통해 다시 청정실로 들어올 경우 주로 여성과 소수 인종 이민자들인 칩 제조실 작업자들은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발암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
이 조사단은 칩 생산작업과 암 발생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거 조사가 극히 적다는 이유로 화학물질이 발암 확률 증가와 관련있는지 확답하기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조사를 일단락지었다. 노동단체와 환경보호론자들은 반도체 업계가 이 문제의 조사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비난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보건부와 환경청은 3년전 반도체 생산직의 발암, 선천성 결손증 등 질환 발생률을 추적 조사하려 했으나 반도체 업계의 협조를 얻지 못해 보류했다.<제이안 기자 jayahn@ibiz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