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가히 지금 통신왕국이다. 전통제조업으로 일궈낸 70년대 아날로그시대의 한강의 기적을 디지털시대를 맞은 21세기에 CDMA 신화로 재현해내고 있다. CDMA 신화는 영원한 벤치마킹의 대상이자 극복의 대상이던 일본까지 무색하게 만들었다. CDMA 서비스와 단말기를 무기로 한국은 세계 무대의 메인스트림으로 당당히 등장한 반면 일본은 서서히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다. 적어도 통신산업에 관한 한 우리에게 더이상 일본은 없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정부주도형 통신 인프라 투자가 민간 주도의 구미 방식에 비해 더욱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까지 얻고 있다. 민관이 혼연일체가 돼 통신 황무지인 한국을 누구나 부러워하는 통신의 옥토로 일궈낸 것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한국을 세계 일류 반열에 올려놓은 주역인 민관의 통신종사자들이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자부심은 자신감과 글로벌 마인드로 이어지고 있다. 통신 종사자들은 2류의 설움을 겪던 지난날의 그들과 확실히 다르다. 그들의 행동에는 자신감이 넘쳐나며 시선에는 항상 세계 무대가 놓여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에게도 아직 과거의 때를 벗지 못하고 있는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바로 안마당이다. 세계 무대에서는 점잖은 큰 형님 대접을 받으면서도 안마당에만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웅다웅이다. 서비스사업자의 단말기제조업 진출, 단말기 보조금문제 등에서 표출되는 통신인들의 생각과 행동은 세계 경영인이라는 이미자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정부는 서비스사업자의 단말기사업 진출 문제가 논란이 되자 이를 제도적으로 금지해놨다. 또한 단말기 보조금이 문제가 되자 이도 조만간 금지할 방침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정부가 필요성을 인정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항상 이 꼬리표가 문제였다. 정책에 일관성을 잃게 만들고 정경유착이니 비리니 하는 의혹들도 다 이런 데서 비롯되고 있다. 정부 당국자의 글로벌화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부의 이 같은 구시대적 행태의 책임은 업계에도 있다. 서비스사업자들이 굳이 단말기사업에 진출하려 하고, 보조금을 통해 가입자를 유치하려 하기 때문이다. 단말기사업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든 서비스사업자들의 단말기 제조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제 과거의 구태의연하고 옹졸한 발상을 메이저에 걸맞게 전환할 때다. 1등만이 살아남는 글로벌시대의 속성은 통신분야에서 가장 극명히 나타나고 있다. 단말기는 노키아, 장비는 에릭슨 등. 특히 에릭슨이 단말기사업을 포기한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1등을 하지 못하는 단말기보다 확실하게 1등을 할 수 있는 장비사업을 택한 점이다.
민관의 통신 종사자들은 외부 평가에 자만해서는 안된다. 이제부턴 메이저다운 생각과 행동을 몸에 익혀야 한다. 관은 한국 현대사의 걸작인 통신산업을 시장원리에 맞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는 꼬리표를 달아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민은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져 한 우물을 파야 한다. 곁눈질할 시간이 없다. 작은 일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크게 생각하고 멀리 바라보며 세계 경영에 매진할 때다.
<유성호 정보가전부 차장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