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모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콘텐츠개발본부장(choism@kocca.or.kr)
6·15 남북공동선언을 기점으로 우리민족은 분단 반세기 동안 이어지던 대립적 남북관계를 상당 부분 청산하고 교류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물론 그동안 북측의 일방적인 회담 취소와 남측의 퍼주기 논란같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고, 최근에는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으로 북미관계는 물론 남북관계까지 얼어붙었지만 그런 정치 외교적 난기류에도 불구하고 남북간 문화예술 및 민간분야의 교류와 협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민간부문이 주축이 된 문화콘텐츠산업의 교류와 협력은 위축됨 없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은 그동안 비극적으로 심화돼 왔던 남북간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문화의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동안의 노고로 적지 않은 열매가 맺어졌지만 그 중의 하나가 남북간 문화콘텐츠산업의 교류협력사업으로 추진된 3차원 애니메이션 ‘게으른 고양이 딩가’다. 하나로통신이 중심이 돼 지난해 3월 정부로부터 협력사업 승인을 받고 북측의 삼천리총회사와 딩가를 공동제작하기로 합의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로통신은 제작기획 등 전반적인 사항을 맡았고, 삼천리총회사는 33편 중 17편 분량을 직접 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딩가가 지난해 11월에 열린 대한민국 영상만화대상에서 당당하게 캐릭터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 북한의 3차원 애니메이션과 가상현실(VR)기술이 예상보다 훨씬 높은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울러 향후 애니메이션·캐릭터·게임을 비롯한 문화콘텐츠산업 전반의 남북간 교류와 협력이 빠른 속도로 확대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딩가 외에도 뮤직비디오·다큐멘터리·영화·애니메이션 등 문화콘텐츠 관련 남북협력사업 다수가 현재 승인을 받아놓은 상태고 일부는 이미 진행중이다. 물론 협력사업들 모두가 순조롭다고 말할 수도 없고, 설사 순조롭다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 때문에 언제 애를 먹을지 모를 일이기는 하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필요한 장비가 바세나르협약 때문에 북측에 반입되지 못하는가 하면, 물감과 같은 기초적인 재료가 부족해 일정에 차질을 빚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민간이 중심이 된 남북간 문화콘텐츠 교류협력사업의 미래는 매우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딩가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남북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작품을 ‘기획’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북측은 현재 딩가와 같은 TV용 애니메이션의 공동기획을 극구 회피하고 있으며, 이미 공동 제작된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방영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남측이 기획한 작품을 북측 TV에 방영했을 때 북한 주민, 특히 애니메이션의 주요 대상인 청소년들이 겪을 문화적인 충격을 심히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현 단계의 남북공동제작사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딩가의 경우처럼 북측의 발달된 기술을 남측의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산업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해외 메이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임금 상승을 이유로 중국·홍콩·싱가포르같은 저임금 국가를 새로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국으로 물색하고 있으며, 국내적으로는 진정한 부가가치생산을 위해 창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착안한다면 낮은 임금에 수준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북측의 노동력과 남측의 창작작품을 접목하는 모델은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교류협력사업의 모범이 될 수도 있다. 그밖에 해외 메이저 제작사들의 주문제작을 우리가 받아 북측에 재하청하거나 직접 북측에 알선해 주는 방법도 현실적인 대안으로 고려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대안들이 지향하는 암묵적인 목표는 ‘하청’이 아닌 ‘남북간 교류협력의 지속적인 확대’에 있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21세기 지식사회의 핵심산업인 문화콘텐츠산업을 서로가 조기에 발전시키는 데 있다. 딩가보다 우수하고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남북이 함께 기획·제작해 세계 시장에 우뚝 세울 즈음이면 그만큼 통일의 날도 가깝게 다가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