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원 시스코코리아 회장 suhong@cisco.com>
데이터통신주식회사(현 DACOM)의 출범은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에서 시작됐다. 한국통신은 사업의 성격이나 문제점이 명확했지만 데이터통신의 사정은 완전히 달라 주무부처인 체신부조차 데이터통신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재촉에 80년 12월 ‘데이터통신사업 육성정책’을 만들었다. 정부 방침은 확정됐으나 통신공사의 설립에 온 정신이 빠져 있던 체신부로서는 데이콤 설립을 병행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었고, 이에 구체적인 행동이 없이 데이콤 설립은 미운 오리 새끼가 됐다.
그러나 다음해 11월 마침내 데이콤 설립안을 완성시켰다. 이 방안의 내용은 민간주도의 주식회사로 설립하되 경영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전문경영인을 두고, 자본에 의한 경영지배는 배제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 방안을 가지고 전경련과 상공회의소를 대상으로 회사설립을 위한 투자설명회를 가졌으나 민간기업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했다. 데이콤 설립이 민간회사들에 의해 또 한번 미운 오리 새끼 꼴이 된 것이다.
민간기업의 반응에 당황한 체신부는 통신관련 기업과 방송·언론기업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교육 겸 설득작업을 벌였고, 이 설득작업이 효과가 있어 출자를 희망하는 기업의 수와 출자액이 대폭 늘어 나중에는 오히려 출자자격을 제한하고 투자금액도 한정해야만 했다. 마침내 미운 오리 새끼 ‘한국데이터통신주식회사(데이콤)’라는 이름의 백조가 탄생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초고속 인터넷망의 국가로 인구 대비 인터넷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세계적인 부러움을 받고 있는데 이 모두가 데이콤이 지속적으로 수행해 온 미래를 위해 뿌린 씨앗의 결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요즈음 데이콤은 완전한 경쟁상태로 변한 통신서비스 시장에서 생존을 위한 도전에 직면했으며, 이 도전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하고 있다. 꼭 성공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정보화의 선두주자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