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컴팩 합병 `법정`에

 

 세계 컴퓨터 시장의 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견되며 큰 관심을 모아온 휴렛패커드(HP)와 컴팩컴퓨터의 합병이 끝내 법정소송으로 비화됐다.

 29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HP 공동 창업자 아들이자 HP 이사인 월터 휴렛은 “HP와 컴팩의 합병을 승인한 지난 19일의 HP 주주총회 표결이 공정성에 문제가 있으니 이를 무효화해달라”며 델라웨어 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휴렛은 이번 소장에서 신속재판 판결을 함께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이번 소송은 보통 재판보다 빨리 진행될 전망이다. 주주들의 공식 찬반 결과를 불과 1∼2주 앞두고 터져 나온 이번 악재로 소송이 길어질수록 HP와 컴팩의 이미지 및 사업전략은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휴렛의 주장=14쪽으로 이루어진 소장에서 휴렛은 HP의 기관투자가인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의 모회사 도이치뱅크가 투표 전날까지 합병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HP 경영진의 회유와 강요에 못이겨 표결 당일 찬성으로 급선회하는 등 투표과정에서 편법이 자행됐다고 주장했다.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는 지난해 12월 31일 현재 HP의 주식 중 1.31%인 2500만주를 보유하고 있는 HP의 11번째 최대 주주다. 지난 19일 있은 HP 주주들의 합병 찬반 투표는 1%내에서 찬반이 갈릴 만큼 박빙으로 알려져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의 지분은 승자와 패자를 가릴 결정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소장에서 휴렛은 불공정 과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는데 그에 따르면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는 주총 투표 나흘 전인 15일까지만 해도 지분 모두를 반대표에 던지려 했다. 하지만 이날 HP가 도이치뱅크와 공동으로 운영하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신용기관을 폐쇄하자 이에 도이치뱅크는 반대표를 던지면 향후 HP와의 거래에 위협이 올 것같아 자회사인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에 찬성표를 넣도록 했다. 결국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는 당초 입장과 달리 2500만주 중 1700만주를 전격 찬성 쪽으로 선회했다고 휴렛은 밝혔다. 그러나 휴렛은 “법정이 주주총회 표결을 인정해 합병이 끝내 실현되면 새 회사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고 말해 타협의 여지도 남겨놓았다. 이번 소송에는 휴렛과 함께 윌리엄 R 휴렛 레보커블 트러스트도 원고로 참여했다.

 ◇HP 및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 반응=휴렛의 법정 공세에 대해 HP측은 “근거없는 주장으로 HP와 직원들의 명성에 흠집을 내 심히 유감”이라고 밝히며 “하지만 컴팩과의 합병작업은 예정대로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양사는 내주 1만5000명을 해고하는 방안과 폐쇄할 사업부서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도이치애셋매니지먼트는 자사와 연관된 휴렛의 불공정성에 대해 논평을 거부했다.

 ◇법률 전문가 시각=버클리대 법과 교수이자 기업고문 변호사인 제스 차퍼는 “어떤 제품이 어떠한 부상을 입혔는지 입증하기는 어렵다”고 비유적으로 설명하며 “표결이 법정에서 번복된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법률가는 “만일 휴렛이 법정에서 불공정성을 입증하면 충분히 표결이 무효화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

사진; HP 월터 휴렛 이사는 "지난 19일 컴팩과의 합병 주초잉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무효소송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