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웅 KTB네트워크 대표이사 kwbaek@ktb.co.kr
흔히 벤처산업을 육성하는 데 있어 벤처캐피털이 ‘자양분’ 역할을 한다면 정부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고 한다. 벤처산업은 이제 막 태동한 신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력산업이며 정부의 방향성 제시는 벤처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국내 벤처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요구가 많아지면서 올들어 산업자원부에서는 ‘벤처종합상사’를 설립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IT를 포함한 벤처기업과 전통산업체간 전략적 제휴 및 해외 진출을 일괄지원하기 위해 벤처종합상사 설립을 추진하고 올해 안에 대외무역법 시행령을 개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출마케팅·벤처캐피털·종합컨설팅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벤처기업의 종합상사가 탄생하게 된다. 물론 종합상사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될 문제가 산재해 있지만 일단 벤처기업의 세계화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크게 반길 만한 일이다.
또한 벤처기업의 해외 진출을 위해 해외 사무소를 투자업체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거나 국내 상사들과의 제휴 등 벤처캐피털들도 벤처종합상사의 역할에 대한 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시점이라 이번 벤처종합상사제도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러나 벤처종합상사 설립안 자체보다는 추진 발표와 이후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게임산업이 각광받으면서 각 부처간 의견조율의 문제점에 대한 비난의 여론에 직면한 일이 있었다.
문화부는 게임음반과, 정통부는 소프트웨어진흥과, 산자부는 디지털전자산업과를 운영하면서 예산과 역할이 겹쳐 PC게임은 문화부가, 온라인게임은 정통부가, 아케이드게임은 산자부가 분할했다.
하지만 게임의 종류와 기능이 복잡해지면서 정책 수립, 예산 편성 등에서 혼선을 빚게 됐다.
문화부가 선정하는 ‘이달의 우수게임’에서 탈락한 업체가 정통부의 ‘신소프트웨어대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온라인게임의 경우 문화부 산하 영상물등급심의위원회에서 받은 판정과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받은 판정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는가 하면, 편의점이나 문방구 앞에 설치된 뽑기게임은 산자부에서 ‘자판기’ 판정을 받기도 했다. 업무 구분이 애매한 상황에서 이른바 부처간 중복투자가 빚은 결과였다.
이번에 산자부가 벤처종합상사 추진안을 발표하자 정통부는 얼마 있지 않아 닷컴기업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활성화 대책에는 닷컴기업의 세계 진출 지원을 위해 IT종합상사 지정제도를 활용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두 부처의 내용을 살펴보면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게다가 벤처종합상사 설립안은 정보통신부 주도로 설립된 이동통신수출진흥센터 기능과의 유사성이 높다는 말도 듣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업계에서는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부처간 중복투자에 대한 우려를 떨쳐 버리기 어렵다.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정부 부처는 산자부·중기청·정통부, 그리고 과기부 등으로 나뉜다. 부처별로 지속적인 벤처기업지원책을 만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이럴 경우 부처간 원활한 업무협조 및 정책의 일관성이 핵심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현재 벤처기업에 관해서는 중기청의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총괄하도록 돼 있으나 정통부나 과기처의 지원방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보니 중복투자의 폐해는 물론 정보를 구하고자 하는 업체들은 결국 여러 기관을 돌면서 정보를 획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올들어 벤처기업들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 산자부에 따르면 1월 벤처기업 수출은 4억3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8%나 늘어난 수치를 기록했다. IT 분야의 수출 비중이 대기업 주력업종인 컴퓨터와 모니터 등에서 디지털위성방송 수신기·MP3플레이어·개인휴대단말기(PDA) 등 벤처업종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런 수출 시장에서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곧바로 벤처산업 부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아직 수많은 벤처기업은 전문인력의 부족, 대기업 상사업체와의 제휴 부진 등 해외 진출이나 외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벤처기업들이 벤처종합상사를 활용하기 위해 어느 부처에 문의해야 되는지부터 고민한다면 정책의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벤처종합상사제도가 벤처정책의 나침반으로서 훌륭히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