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초부터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 일본 VDSL(Very high bit rate Digital Subscriber Line)장비시장에 한국 네트워크장비 업체들이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시장 선점에 나섰다.
일본내 초고속인터넷망은 지난해까지 케이블망이 주종을 이뤘으나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ADSL망 가입회선이 케이블 가입 회선수를 앞서 나가며 일본내 인터넷망 인프라 구축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ADSL망보다 한단계 높은 초고속망으로 평가받고 있는 VDSL망이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NEC, 후지쯔 등 일본내 IT 장비업체들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미 지난해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을 마친 한국 기업들이 지난해 말부터 일본 시장을 공략, 한 발 앞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순조로운 시장 진입=올해말까지 일본내 초고속인터넷망이 900만회선을 넘어설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 중 최소 10만회선은 VDSL망으로 깔릴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 시장을 놓고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업체는 기가링크로 이미 중부전력, 키텐, NTT-ME 등으로부터 1만5000포트 수주 계약을 마치고 NTT컴, KDDI, NTT동·서 등과 추가 물량 확보를 위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기가링크는 올해 5만포트 분량을 수주, 일본시장에서 15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코리아링크도 일본내 한 업체와 공급 계약을 거의 마무리해 놓은 상태로 올해 VDSL장비 수출만으로 50억원의 매출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이밖에 사이버스페이스링크, 코어세스, DID 등이 일본에 현지법인을 두고 VDSL시장 현황 조사 및 입찰에 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업체가 현재처럼 순항한다면 올 연말에는 한국 네트워크업체들이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 내년 이후 시장 확대에 따른 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아직 안심할 단계 아니다=한국 업체들이 내세우는 강점은 한국내 DSL장비 수주 실적과 현장 경험이다. 또한 기술력에서도 일본내 IT기업들과 비교해 결코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은 넘어야 할 산이 더 많다는 게 현지 관계자의 지적이다. 우선 급격한 VDSL장비 가격 하락에 따른 수지 악화가 발등의 불이다.
기가링크측은 현재까지 수주 가격이 회선당 200달러를 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타 업체 관계자들은 이미 일본내 가격은 200달러 선이 무너졌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K사가 2만엔(150달러) 이하 가격을 망사업자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어 수주해도 별로 남을 게 없는 장사라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시장개척을 위해 일본에 눈을 돌리던 업체수가 한때 19개사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10개사 미만에 그치고 있다.
또한 일본시장의 경우 제품에 대한 신뢰는 물론, 제조사에 대한 신뢰를 쌓지 않고서는 시장 정착이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오래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리아링크의 오사무 사타케 지사장은 “올해는 조금씩 실적을 쌓아가며 코리아링크의 신용도를 높이는 한 해로 만들 것”이라며 “장기간에 걸친 신뢰 관계 구축없이는 일본시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여기다가 후지쯔·멜코·얼라이드테레시스 등 일본 기업들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대만제 OEM 제품과의 가격 경쟁도 점차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최근 NEC가 초당 최대 하향 51.2Mb, 상향 6.4Mb인 제품을 5월 출시하기로 하는 등 일본 기업들이 직접 공세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마케팅력과 브랜드 밸류가 떨어지는 한국 기업들이 고전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도쿄 = 성호철 특파원 sunghochul@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