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가전 신화`의 화려한 부활

 ◆이택 정보가전부장 etyt@etnews.co.kr

“삼성은 샤프나 히타치보다 비용 대비 효과가 크고 생산기술도 우월하다. 일본 기업들은 2년 전에 경쟁을 포기했다.”( 노무라증권 애널리스트 미코시바 시로)

 “가전분야에서 소니를 추월하기 직전에 있다.”(이데이 노부유키 소니 CEO)

 CNN이 최근 보도한 ‘삼성전자 고급제품 시장 휩쓸다’라는 기사에 인용된 주요 인사의 멘트다. 내용 역시 이것이 진짜 한국의(비록 삼성으로 상징화됐지만) 업체를 평가한 내용인지 헷갈릴 정도로 현란하다. 경계심의 발로이건 혹은 진정한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건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거물들의 이같은 말은 적어도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다.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으로 천대받는(?) 가전산업의 위상을 바깥에서는 이처럼 엄청나게 인정하는 것에 대해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사실 온라인 비즈니스, 인터넷, IT만이 모든 것이라는 ‘닷컴 광풍’이 불면서 ‘가전’이라는 단어는 철저히 소외됐다. 가전은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경제를 떠 받치는 견인차로, 세계 최대 전자생산국이라는 영예를 한 몸에 누렸다. 하지만 요 몇년 사이 옛 영화는 온데 간데 없고 저가품, 아날로그 시대의 종말과 함께 쇠퇴, 퇴출의 부정적 이미지로 전락했다.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지 과잉시대에 ‘가전’은 바로 그 이미지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가전 종사원’들의 자존심에 심한 상처가 난 점이다. 한 때는 반도체나 액정같은 지금의 전략산업을 키우는 젖줄 역할을 했고 글로벌 마케팅의 최일선에서 외국의 거대기업과 전쟁을 치렀던 ‘전사’들도 ‘가전’ 종사원들이었다. 자부심도 대단했고 성공 신화를 창조했다. 그러나 빛의 속도로 변하는 기업환경에서 저가품, 저부가가치 제품을 앞세운 한국의 가전은 급속히 수세에 몰렸다. 같은 회사에서도 흑자 타령에 콧노래를 부르는 반도체나 액정분야와는 사정이 달라지게 됐다. 심지어 연말 성과급조차 차별받는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잘나가는 IT와 비교하면 왠지 뒤처지고 자신 없는 모습이었다. 회사의 경영역량도 IT쪽에 집중됐고 가전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온 나라가 IT에 들떠 있을 때 ‘가전’은 소리 없이, 한 걸음씩 변신을 시도했고 이제 막 그 열매를 맺는 시기까지 왔다. 외신 보도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가전산업은 디지털 고급제품으로 환골탈태, 다시한번 ‘가전 왕국’ 신화를 열어가고 있다. 아날로그 가전에 디지털의 옷을 입혀 고부가제품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DVD플레이어, PDP 등 대형 벽걸이TV, 디지털 기능이 대폭 보강된 세탁기, 냉장고 등.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도 총력을 기울여 싸구려 이미지도 벗어던졌다. 외국 부자들의 지갑을 열기에 충분할 만큼 성능과 디자인이 경쟁력을 갖췄다. 덕택에 샤프를 벤치마킹하던 우리 기업들은 이제 소니가 긴장하는 업체로 성장했다.

 물론 여기에는 세계 최강의 입지를 구축한 반도체와 액정, 통신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계, 시너지 효과를 창출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삼성과 LG가 반도체, 액정, 통신, 광부품에서 세계적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고급 디지털 가전으로의 재탄생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가전이 키운 ‘자식들’이 이제는 장성해 다시 ‘부모’를 부추기는 최상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 가전 시장은 존재한다. 그 규모 또한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다. 문제는 1등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고 값비싼 고부가제품이 아니면 퇴출당할 수밖에 없는 변화된 환경이다. 지금까지의 적응은 성공적이다. 기업인들도 산전수전 다겪은 백전노장 아닌가. 소니를 향해 맹렬히 뛰는 한국 가전업체들에게는 ‘화려한 부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자신감부터 갖자. 일본이 했다면 우리는 더 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