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우 디지털경제부 차장 kwlee@etnews.co.kr>
최근 정기적이라고 할 만큼 잇따라 터지고 있는 벤처 비리사건은 보는 이들의 심정을 착잡하게 한다. 벤처 붐이 일면서 그동안 기업 운영의 관행으로 여겨지던 뒷돈과 로비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투명을 원칙으로 하는 벤처기업의 이미지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최근 발표된 벤처기업의 지난해 실적을 보면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미국발 불황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해 세계 경제는 1.2% 성장에 그쳐 전년 대비 2.7%포인트나 하락했다. 성장감소폭은 지난 74년 오일쇼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경기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소 위안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영업이익의 적자는 외부 환경이든 내부 환경이든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 일시적인 영업상의 어려움은 있어도 적자지속이 장기화되는 것은 이해를 구할 수 없다. 청산 가치가 존속 가치보다 크다면 그 기업은 더이상 존속 의미가 없다. 그러나 코스닥시장에는 이런 IT벤처기업이 꽤나 많다.
대표적인 지표가 이자보상배율이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배 미만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함을 뜻한다. 이자보상배율 1배 미만인 기업은 이른바 ‘헛고생에 땅 팔아 장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 IT벤처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IT기업이 주류인 코스닥 벤처기업들의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은 1.6배. 영업이익에 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이익이 이자의 60% 선이라는 얘기다. 최악의 불황을 감안하면 그저 그런 수치라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사정을 알고 보면 속은 더 답답해진다.
금융업을 제외한 코스닥등록기업 전체 영업이익은 2조7780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28.7% 증가했다. 이자비용은 20.5% 증가한 1조3829억원으로 이자보상배율은 지난 2000년 대비 6.8% 증가한 2.0배였다. 이를 일반기업과 벤처기업으로 구분할 경우 일반기업은 영업의 호조로 영업이익이 크게 증가해 이자보상배율은 2.1배로 지난해 대비 63.8% 증가했다. 결국 코스닥 전체 이자보상배율을 IT기업의 집합체라 할 수 있는 코스닥 벤처기업군이 까먹은 꼴이 됐다.
여기에 영업손실로 이자보상배율을 계산할 수 없는 회사는 2000년 55개사에서 지난해 157개사로 증가했다. 대부분 IT기업으로 ‘이자보상배율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이다. 이는 자본잠식으로 이어져 자칫 시장퇴출이라는 위험마저 감수해야 하는 위기에 놓일 수도 있다.
성장성으로 부각되던 IT벤처기업들에 거품이 걷히면서 수익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아직 속 시원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대감에 의해 주가가 좌우되던 시기도 지났다. 실적장세가 펼쳐지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외면당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벤처 부흥 4년여를 맞는 지금 잇단 비리로 얼룩진 기업,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벤처에 보낼 갈채는 더이상 없다. 벤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떨쳐 버리는 것과 이자라도 낼 수 있는 기업으로 남는 것은 벤처기업 스스로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