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빨리빨리`와 `만만디`

 “정말 미치겠습니다. 9시에 오픈하려면 최소한 30분 전에는 모든 세팅을 마쳐야 하는데 주최측이 8시가 넘어서야 문을 열어줘 이제 부랴부랴 준비하고 있어요.”

 컴덱스차이나에 부스를 마련한 한 한국기업 관계자는 중국 주최측의 ‘만만디’에 거의 질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외국인이 한국말을 익힐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빨리빨리’라는 얘기가 있다. 외국인이 중국말을 배울 때는 그와 반대로 ‘만만디’를 가장 먼저 배운다고 한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는 양국의 국민성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전시회에 참여한 한국기업이 중국 주최측의 늑장에 괴로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극과 극의 만남 때문일 듯 싶다.

 지난해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많은 중소기업인을 만날 수 있었다. 중국 붐이 불기 시작한 지난해 중국에서 만난 우리 기업 경영자들은 모두 중국 진출에 대한 기대와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그러나 이번 중국 방문에서 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기자는 다소 힘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게 됐다. “중국은 결코 만만한 시장이 아닌 것 같아요. 특별히 잘못돼 가는 것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해서 어떤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도 않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삼성 중국본사 강효진 사장은 우리 중소기업들이 중국에서 겪는 가장 큰 마음고생으로 ‘한 없는 기다림’을 꼽는다. “옆에서 지켜보면 가슴 아플 때가 많습니다. 중국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서서히 접근해야 하는 시장인데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기업 대부분이 이것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 시장은 있지만 될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중국 사업. ‘만만디’로 일관하는 중국 고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빨리빨리’를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다. 물론 ‘빨리빨리’ 문화가 나빠서가 아니다. 거대한 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에서 우리가 뭔가 수확을 거두기 위해 취해야 하는 일시적인 사고전환인 셈이다.

 ‘전시회는 관람객을 받기 전에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우리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사고와 ‘다소 늦어지더라도 전시회만 잘 진행되면 문제없다’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사고 방식. 힘들겠지만 우리가 중국의 ‘만만디’를 진정으로 이해할 때 중국시장은 우리에게 진정한 기회 땅이 될 것이다.

 <베이징(중국)=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