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제록스(Xerox)의 교훈

 ◆유용석 한국정보공학 사장 ysyoo@kies.co.kr

 

 ‘포천’지는 지금까지 미국시장에 출시된 신제품 중 가장 성공한 것이 제록스 복사기였다고 기술한 바 있다.

 제록스(Xerox)라는 회사명은 이제 전세계적으로 ‘복사하다’라는 뜻으로 통하고 있으며 최초 모델은 현재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될 정도다.

 제록스사는 70년대 초 팰러앨토연구소(PARC:Palo Alto Research Center)를 설립하고 미국 최고의 컴퓨터 관련 학자 수백명을 연구원으로 채용했다.

 컴퓨터 간에 그래픽의 공유가 가능한 ‘비트맵(Bit map)’ 디스플레이, 근거리통신망(LAN), PC의 필수품인 마우스,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용화에 성공한 윈도 운용체계의 아이디어도 실은 제록스가 찾아낸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제록스는 이러한 선구적인 개발 업적에도 불구하고 앞선 아이디어를 상용화하는 데는 실패하는 기업이 되고 말았다. 제록스가 스스로 발견한 아이디어에 대해 이렇다할 만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다른 기업이 상용화에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제록스사에는 ‘미래를 놓치는 기업’이라는 평판이 따라붙었고 팰러앨토 또한 ‘뛰어난 연구는 수행하나 사업과는 무관한 조직’이라는 되돌리기 힘든 평가를 받게 되었다. 

 필자 역시 10년 이상 벤처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기술개발에 매달려왔던 것 같다. 열정과 노력을 쏟아온 시간만큼 연구성과물이 축적되었고 개발한 제품들이 각종 상을 수상하는 등 나름대로 인정을 받으면서 기술력에 있어서 만큼은 우수하다고 자부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몇몇 개발 제품들이 시장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반응을 얻지 못하고 단지 개발자들의 자족스런 결과물로 남게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점차 바뀌게 되었다.

 94년 한국정보공학은 국내 최초로 ‘미래로’라는 통합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업계의 호평을 받았고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대상을 거머쥘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던 적이 있었다. 당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우리의 제품은 마케팅에 실패해 이후 유명 소프트웨어 회사의 번들제품으로 끼워서 판매해야 하는 고배를 마셨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필자는 최근 들어 개발자들에게 비즈니스 마인드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기술은 팔리는 제품으로서 평가를 받아야 하며 현실에 접목시킬 수 있는 연구결과를 찾아내기 위해 개발자 역시 시장과 소비자에 대해 부지런히 공부하고 변화의 추이를 감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당부하곤 한다.

 가끔 사무실을 돌아다니다 보면 개발자의 빈 자리를 발견하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 ‘왜 자리를 비었을까’라는 생각이 앞서지 않는 것이 요즘이다.

 그들이 고객 사이트를 돌며 고객의 불만이 무엇이고 고객이 갈망하는 것이 어떤 제품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연구활동의 일부임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크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 내는 일은 결코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이를 가장 먼저 인지하고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개발자의 발걸음은 그만큼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취업난이 점점 심각해지면서 벤처 창업의 열기는 수그러질 줄 모르고 있다. 생겨난 지도 얼마 안된 수십, 수백 개의 벤처기업들이 하루에도 숱하게 문을 닫아야 하는 현실을 목도하며 다시 한번 ‘기술’과 ‘제품’에 대한 제록스의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