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에 대한 투자확대가 시급하다. 우리가 보유한 슈퍼컴퓨터의 용량이 지난 2000년보다 5배 이상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슈퍼컴퓨팅 파워(실질성능 기준:1840기가플롭스)가 미국·캐나다(241대, 12만2340기가플롭스), 일본(57대, 2만2957기가플롭스), 유럽(152대, 4만3202기가플롭스) 등 선진국에 비해 너무 뒤져 비교하기 조차 힘들다는 것은 국가적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최대 69배까지 차이가 나는 이러한 컴퓨팅 파워로는 기술선진국 진입은 물론이고 향후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나노 및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나노 및 바이오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수백만건의 실험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의 슈퍼컴퓨팅 파워를 늘리는 것은 그 무엇보다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슈퍼컴퓨터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장기적인 일기예보는 물론 강한 핵력을 규명하는 입자물리학, 물체의 전자적 특성을 계산하는 고체물리학, 우주의 구조와 진화를 밝히는 천문학 등 자연과학 연구는 물론이고 항공기 및 선박 개발, 자동차 충돌실험, 유전 탐사자료 분석, 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시뮬레이션, 반도체 소자 개발 등에 사용된다.
특히 게놈 프로젝트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다. 인간 게놈은 글자로 치면 70억자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로 이를 분석해 유전자의 규칙을 밝히려면 엄청난 속도의 연산능력을 가진 고성능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팅 파워를 국가경쟁력의 척도로 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숭실대학교 최재영·김명호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이상산 박사가 최근 발표한 ‘TOP50 2002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500대 슈퍼컴퓨터에 포함될 수 있는 조건(최소 실질성능 94.3기가플롭스:1기가플롭스는 초당 10억회의 연산능력)을 갖춘 슈퍼컴퓨터는 12월 말 현재 8대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리가 슈퍼컴퓨터 도입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슈퍼컴퓨터가 산업체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산업체 70%, 연구소 18.0%, 대학 8.0%인 우리의 슈퍼컴퓨터 보유 비율은 산업체와 연구소의 비율이 52.2%(261대), 22.4%(112대)를 차지하는 세계 수준과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들어 슈퍼컴퓨터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KISTI가 오는 2003년 4월까지 3686.4기가플롭스를, 기상청이 2003년 1월까지 160기가플롭스를 추가하게 되면 우리의 컴퓨팅 파워가 미국·일본을 뺀 다른 나라와 견줄 수 있다고 한다.
또 자체 제작한 시스템 활용이 늘어나는 것도 반가운 현상이다. 벡터 방식 일변도이던 슈퍼컴퓨터의 구현방식이 병렬처리 방식으로 확대되는 등 컴퓨터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슈퍼컴퓨팅 파워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슈퍼컴퓨터 도입을 위한 정부예산을 늘려야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차제에 부족한 우리의 슈퍼컴퓨팅 파워가 부족한 슈퍼컴퓨팅 파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했으면 한다.
<박광선위원 k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