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이케다와 후지쯔의 경영전략

 ◆금기현 논설위원 khkum@etnews.co.kr

 

 일본 후지쯔에 가면 이것 저것 볼 것이 많다. 후지산 기슭에 있는 누마주공장도 그중 하나다. 후지쯔에서 판매되는 중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개발·생산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는 특히 제품 생산라인 외에 방문객의 눈길을 끄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케다 도시오 기념관이다. 후지쯔는 이 공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꼭 한번 둘러보게 한다.

 기념관에는 이케다가 51세의 나이로 죽기 전까지 후지쯔에 근무하면서 사용하던 많은 유품이 전시돼 있었다. 손으로 깨알같이 쓴 수학문제와 도형 관련 책자, 개발품들이 잘 정돈돼 있었다.

 후지쯔는 이런 이케다를 ‘컴퓨터 천재’라 부른다. 그는 후지쯔가 처음으로 만든 중대형 컴퓨터인 파콤을 비롯해 많은 제품을 개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기념관에서 들은 내용 중 놀라운 것은 그의 직장생활이었다.

 이케다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회사에 나가지도 않고 몇날 며칠이고 집에 앉아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회사에서 퇴근도 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시 일본의 회사 규율상 있을 수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당시에는 정시에 출근해 정시에 퇴근하는 게 회사 규칙이었다. 하지만 이케다는 이를 완전히 무시했다. 그는 이런 직장 생활로서 IC칩을 탑재한 파콤230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IBM과 시장경쟁을 벌였다. 결과는 일본 후지쯔를 국내 1위 기업으로 만들었다.

 이케다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한다. 당시 후지쯔는 하루 출근하지 않으면 하루분 임금을 주지 않는 일급제를 도입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에서 일을 하는 이케다는 일급은 물론 상여금까지 받을 수 없는 게 마땅했다. 그러나 후지쯔는 이케다 한 사람을 위해 그동안 해오던 일급제를 고정월급제로 바꿨다.

 그뿐이 아니다. 이케다의 능력을 인정해 35세에 전산기 과장, 41세에 전산기 기술 부장, 47세에 이사로 승진시키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한마디로 유연한 경영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케다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후지쯔의 이런 경영은 계속되고 있다. IT 환경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유연한 경영전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후지쯔를 메인프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하드웨어업체 정도로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많이 달라졌다. 후지쯔는 인터넷시대에 발맞춰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주축으로 하는 종합서비스업체로 발빠르게 형태를 바꿨다.

 96년까지만 해도 전체 매출액(4조5억원)의 34%에 지나지 않던 서비스와 소프트웨어 비중이 2001년에는 매출액 5조원의 41%에 해당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많은 일본 업체가 전형적인 연공서열이나 종신고용제에 매달려 꼼짝하지 못하는 것에 반해 조직문화를 탄력적으로 운영, 하드웨어기업을 소프트웨어 위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또 한 가지 한국후지쯔의 파격적인 행동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통상 한국 현지법인은 한국에서 영업을 하는 게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후지쯔는 일본에다 소프트웨어사업부를 설립해 놓고 후지쯔 본사와 사업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반적인 본사와 현지법인간 관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모든 것이 고정관념을 벗어난 이케다 정신을 경영에 반영한 후지쯔의 유연한 경영철학의 소산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