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의규 에스컴 대표
지금 우리 경제는 새로운 호황에 다가서고 있다. 이 호황은 단지 새로 출현한 또 하나의 호황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형태의 호황을 의미한다. 이 호황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려면 지난 5년간 우리가 겪어온 경제사와 함께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경쟁환경을 동시에 대입시켜 보아야만 한다.
과거 우리 경제가 바람의 힘으로 항해하는 범선이었다면 지금은 자체 동력을 가진 기선에 비유할 만하다. 미국과 일본과 같은 동종 초강대국들의 독주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연구비를 투자해 온 우리 반도체 업체들의 끈기, 현재의 호황은 거기에 힘입은 바 크다.
무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인으로 IT를 중심으로 한 벤처의 급성장을 들 수 있다. IMF체제 하의 척박한 토양 위에서 겨우 목마름을 피할 정도의 벤처캐피털에 의존해 성장해온 IT산업. 벤처투자 무드는 벤처들에 젖줄이 되기는 부족했지만 오아시스와 같은 해갈효과를 줬다.
우리 벤처들은 99년을 기점으로 나타난 몇몇 거품 성공신화를 목격했으며 많은 선의의 투자 피해자들을 양산해내기도 했다. 옳건 그르건 벤처드림은 캐피털의 수혜를 보지 못한 대다수 벤처들에 새로운 희망의 서광이었으며 강력한 마력으로 작용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것은 어쩌면 ‘신기루 효과’인지도 모른다.
그 원인은 차치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벤처산업을 자극함으로써 수많은 벤처들의 크고 작은 성공들을 일궈냈다. 병목과 같은 협로를 통과한 벤처들이 비교적 IT의 작은 거인으로 성장했다면, 그 협로를 향해 돌진해 온 무명의 벤처들은 다부진 체력을 쌓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 IT의 현주소이며 두 가지 열매다. 이미 상당부분의 소프트웨어와 정보산업이 세계 최고 반열에 올랐고 IT 전반에서 우리는 누구나 공인하는 세계 최강국이다.
숨가쁘게 전개돼 온 지난 5년을 되짚어 보자. 처음에는 기술력만 우수하면 투자를 아끼지 않던 캐피털들과 묻지마 투자도 마다하지 않던 투자자들이 너나없이 2001년 초부터는 매출과 같은 실적 검증을 투자요건으로 내세웠다. 수많은 벤처들에게 낙망을 안겨주었던 당시 투자기준 변화의 쇼크는 선진국의 투자분석 시스템으로의 선회라는 명분 아래 벤처시장을 급속하게 냉각시켰다. 그 쇼크는 우수한 기술을 개발하여 자금만 받으면 성공하기에 손색이 없었던 많은 벤처들에 뜻밖의 파산을 자초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벤처들은 시장검증을 요구하는 진검 승부의 관문까지도 하나 둘씩 속속 통과하는 실력과 대범함을 보여줬다.
아픔을 딛고 성공을 이룬 한국의 벤처산업. 앞에서도 비유했듯이 이제 앞으로 다가 올 호황은 과거 순풍에 돛을 단 범선의 호황과 확연히 다르다. 메모리 반도체, 소프트웨어, 정보인프라, 인터넷 등이 호황의 주역들이다. 과거 호황의 주역이던 섬유, 자동차, 조선, 전자 등 노동집약적인 산업과 비교할 때 단위 부가가치 면에서 최하 10배에서 최고 20배까지 높다. 게다가 생산성 개념에서는 원칙적으로 한계가 없으며 경기의 사이클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이같은 장밋빛 호황은 우리의 전유물이 아니며 결코 영속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한 고지일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3년 내지 5년 안에 지금 우리가 쌓은 아성을 만리장성으로 넓힐 수도, 거저 내어 줄 수도 있다. IT분야에서 새로운 경쟁자인 중국, 인도, 네팔, 러시아 등 수많은 신진들이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나 벤처 자본시장의 수혈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벤처 자신들의 싸움에 달렸다. 이제 경영의 타깃은 펀드나 벤처인증과 같은 것이 아니라 세계시장이며 세계 유수의 경쟁자 또는 숨은 강자들이다.
이제 광속의 경쟁만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이겨야 한다. 멈출 수 없는 전쟁을 이미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