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남 ET담당부국장 bnjung@etnews.co.kr
1일 현물시장의 128M D램 가격은 평균 2.92달러였다. 지난 몇달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던 현물가격이 3달러선조차 지키지 못하고 무너진 것은 지난 1월 4일 이후 5개월만이다. 올들어 주력상품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256M 제품도 예외는 아니다. 9달러선이 붕괴됐다.
시장에선 다양한 분석이 뒤따랐다. 비관적인 분석가들은 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협상 결렬에 따른 충격파를 넘어 수급 불균형 현상이 재현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반대로 낙관적인 전망은 양사 협상 여파라는 일시적 현상으로 가격이 주춤하지만 6월께 바닥을 찍고 하반기에는 재상승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시각이 옳은지는 향후 시장 추이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당장 결론이 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전세계 분석가들의 공통된 지적사항도 있다. 그간 어렵사리 D램 가격을 지탱해 왔던 원인 즉 업계의 수급 메커니즘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반영이 그것이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가격 폭락은 IT산업을 강타한 공급과잉의 산물이었다. 수요에 비해 D램 업계의 생산 규모는 턱 없이 높았고 이 때문에 초일류라는 삼성전자마저 일시적 적자를 기록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메모리 빅5는 서로 피흘리면서 누가 먼저 죽어나갈지 버티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 공급 과잉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타파하기보다는 그 함정에 매몰된 채 생존투쟁을 벌인 것이다.
올들어 D램 값이 상승한 것은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협상에 힘입은 바 크다. 양사의 인수합병을 통해 근본 모순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물시장과 고정거래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타 업체들도 이심전심 생산물량을 조절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메모리업체들은 1분기 영업이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반도체 경기회복이라는 착시현상으로 연결되는 것은 우려할만한 일이다. 여전히 최대시장인 PC 수요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공급과잉 체제 역시 건재하다. 적어도 마이크론과 하이닉스의 매각 협상이 결렬된 지금은 말이다.
비록 삼성전자가 최대이익을 기록했다고 할지라도 D램이 주역은 아니다. 물론 D램 원가가 가장 낮은 삼성이 가격 상승으로 일정한 수익을 냈지만 PC 이외의 각종 정보기기에 탑재하는 플래시 메모리에 힘입은 바 크다. 도시바와 삼성 만이 생산하는 이 제품의 경우 시장은 폭발하는데 도시바는 미국 공장을 마이크론에 매각, 함께 있던 플래시 메모리 생산 라인을 일본으로 옮겨오느라 생산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삼성은 엄청난 반사이익을 챙기고 있다. 이 현상 역시 수급이 반도체의 가격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D램 업계가 모든 상황이 지난해로 U턴했다고 판단할 경우 그간 간신히 유지해 온 수급 메커니즘이 뿌리에서부터 뒤틀릴 수 있다. 어차피 모두 함께 잘 살 수 없다면 누군가를 쓰러뜨려야 하고 그 경우 가장 약자를 지목하는 것이 정글의 법칙이다. 지금으로선 하이닉스가 코너에 몰리고 있다. 만약 우여곡절 끝에 하이닉스가 독자생존으로 가닥을 잡더라도 삼성이나 마이크론이 출혈경쟁의 칼을 뺀다면 D램업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업는 격류에 휩싸이게 된다.
하이닉스가 정부의 의지대로 마이크론 혹은 제3자와의 재협상 수순을 밟을지 아니면 독자생존이라는 외길로 갈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건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흑자를 내기 위한 수급 메커니즘의 건재가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