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스타들이 화려한 무대를 뒤로한 채 줄줄이 떠나고 있다.
세계 최대 유닉스서버 업체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의 2인자 에드 젠더 사장 사임 소식이 알려진 2일(현지시각), 월가는 물론 선의 고객과 경쟁사들은 그 전격성에 깜짝놀랐다. 선에서 15년간 근무한 베테랑인 젠더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오늘날의 세계적 선을 만든 일등공신. 이 때문에 호사가들은 젠더와 스콧 맥닐리 CEO와의 불화설 등을 거론하며 젠더의 퇴임 사유를 추측하기에 바빴다. 어쨌든 경기침체 이후 이처럼 미국 하이테크 기업들을 떠나는 고위경영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젠더 외에도 가장 최근에는 미국 2위 장거리전화업체 월드컴의 CEO 버나드 에버스가 명예회장으로 CEO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으며 이보다 5일 앞선 25일에는 세계 2위 컴퓨터중앙처리장치(CPU) 업체 AMD의 창업자 제리 샌더스가 역시 33년 만에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달 9일에는 아메리카온라인의 CEO 배리 슐러 역시 CEO에서 물러났으며 3일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사장 릭 벨루조도 ‘엑소더스 열차’에 탑승했다. 또 지난 3월 5일에는 아마존닷컴의 최고재무책임자 워렌 젠슨이, 그리고 1월 29일에는 세계 최대 컴퓨터업체 IBM의 CEO 루이스 거스너가 9년 만에 CEO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작년 1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EMC의 CEO 빌 게이츠와 마이클 루거스가 각각 CEO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해 세계 IT업계를 술렁이게 한 바 있다.
인력관리 전문가 및 경영진 헤드헌팅 업체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앞으로 1년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들은 그 이유로 경기 침체에 따른 기업의 실적 부진, 주가 하락, 대량해고에 따른 부담감 등을 들고 있다.
애틀랜타에 있는 고위경영자 중심 인력업체인 매니지먼트 디시전스의 대표 밥 윈터는 “하이테크업체들의 주가 실적이 주주들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경영자들이 주주들에게 압력을 받고 있는데 특히 최고경영자에게 그 압력이 집중되고 있다”며 “이사회와 주주들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하이테크 기업 고위경영자들이 대량 해고에 따른 부담감까지 겹쳐 완전히 지쳐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이들이 고위경영자 자리를 포기하고 속속 떠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선의 잰더 사장의 경우 작년에 3900명을 해고했으며 주가도 2000년 9월 당시 64달러였지만 이달 1일에는 6.97달러로 추락한 상태다. 젠더를 잘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대규모 해고로 고통스러워 했다”고 전하고 있다.
뉴욕 소재 최고경영자급 인력회사 스테펀브래드포드서치의 대표 미첼 버거도 “자신들이 직접 채용, 훈련, 성장시킨 직원들을 잘라야 하는 경영자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전하며 “때로는 매우 친한 사람에게도 칼을 대야 해 이들의 인간적 고뇌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미시간 비즈니스 스쿨의 조직행동 및 인력관리 분야 전공 카메론 교수는 “대량 해고가 거꾸로 많은 경영진들을 떠나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하고 있다”며 “회사가 한번 해고를 하면 직원들이 수동적으로 변해 경영 혁신보다는 자리 보전 등에 연연, 결국 이는 기업의 실적부진으로 이어져 경영진들이 회사를 떠나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방은주기자 ejb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