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통신 사장 신윤식 shin@hanaro.com>
체신부 차관 시절이던 지난 89년 5월 17일이다. 해외출장 중이던 장관을 대신해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필자는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양방향 케이블TV 방송을 도입하고,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90년 7월부터 서울 강남의 대규모 아파트단지 1만가구를 대상으로 시범 서비스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었다.
당시는 케이블TV 방송에 관한 다각적인 제도마련을 위해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대상으로 한 시범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고 국내에 방송도 보고, 통신서비스도 되는 선진국형 양방향 케이블TV를 도입해야 여러모로 유익할 것이란 판단으로 택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국회로부터 왜 하필이면 8학군인 강남지역에서 시범서비스를 실시하냐는 호된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 후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가 담당했던 국내 케이블TV의 전송설비는 단방향 서비스만 가능한 450㎒ 주파수 대역폭 위주로 구성되었고, 결과적으로 국내 케이블TV 업계는 사업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숱한 부침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나마 주무부처도 아닌 산업자원부 산하의 한전에서 양방향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750㎒ 주파수 대역폭의 케이블 설비를 도입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통신방송융합형 서비스인 디지털위성방송의 출현으로 케이블TV 업계가 분주해지고 있다. 그동안 사업성을 장담하지 못했던 케이블TV가 초고속인터넷, VoIP 등 통신서비스와 연계된 양방향 멀티미디어 서비스 제공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음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국내 케이블TV 업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이미 단방향의 케이블TV를 도입했던 제도적 실패를 경험한 바 있고, 한발 앞서 통신방송융합형 서비스를 선보인 위성방송과 치열한 가입자 경쟁을 펼쳐야 하기 때문에 이젠 더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단방향의 케이블TV는 경쟁력이 없었지만, 양방향의 디지털화된 케이블TV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통신서비스와 연계된 부가서비스 발굴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 내고 시설집중화로 경비절감을 꾀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이 선행된다면 향후 가정 종합 정보미디어로 자리잡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21세기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디지털 방송시대를 맞아 정부와 케이블TV 사업자들의 진지한 고민이 다시한번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