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세계 경제대국 2위의 자리에 올려놓은 ‘일본의 자존심’ 전기전자메이커 9개 메이저 업체들이 지난해 죽음의 늪을 건넜다.
4838억엔의 당기손실을 기록한 히타치제작소를 비롯해 9대 메이저의 손실 규모는 무려 1조9129억엔에 달한다. 9대 메이저 중 흑자를 유지, 체면치레를 한 곳은 단 3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6개사는 ‘사상 최악’ ‘전후 최악’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했다. 표참조
◇최악의 경영 성적표=올 3월말로 회계연도를 끝낸 지난 2001년 각사 연결재무제표 기준 결산에 따르면 매출 1위를 차지한 히타지제작소를 비롯해, 마쓰시타전기산업, 도시바 등 메이저 9개사 중 소니를 제외한 8개사가 매출 감소를 기록했다. 9개사의 매출은 전년대비 6.5% 줄어든 45조 4283억엔을 기록했으며 특히 마쓰시타와 미쓰비시는 10%가 넘는 매출 감소폭을 기록했다.
당기순익은 더욱 처참하다. 2000년도에 9대 메이저 모두가 흑자를 기록한 데 비해 지난 회계연도는 히타치를 비롯한 마쓰시타가 4000억엔대, NEC 및 후지쯔가 3000억엔대, 도시바가 2000억엔대 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흑자를 기록한 소니, 산요전기, 샤프의 경우도 전년대비 8∼95% 흑자폭이 줄어드는 등 IT 불황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이런 수치는 9개사가 최대 이익을 낸 지난 90년의 1조엔 순익 규모나 전년도 5291억엔의 순익과 비교해 볼 때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참패의 원인=주요 원인은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부품 분야의 불황이 꼽힌다. 히타치는 반도체부문에서 전년대비 매출이 39% 줄어드는 등 1335억엔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또한 NEC가 1481억엔의 영업손실, 후지쯔가 1093억엔의 영업손실을 각각 기록하는 등 대부분의 업체들이 세계 IT 불황에 따른 전자부품 수요 감소 및 재고 증가의 긴 터널을 건너야 했다.
지난 한해 전자전기메이커 업계가 인력 삭감 및 제조공장 거점 정리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 점도 지적된다. 9대 메이저가 지난 한해동안 구조조정 비용으로 쓴 액수만 대략 1조6000억엔에 달한다. 회사별로 지난해 1∼2만명에 달하는 인력을 희망퇴직 등의 형태로 인력 감축 작업에 돌입, 특별퇴직금 등 특별손실이 예상외로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그래도 약진한 소니=9대 메이저 중 유일하게 매출 규모를 확대하며 일본내 매출 대비 2위로 뛰어오른 소니가 돋보인다. 소니의 경쟁력은 전년대비 51.9% 늘어난 1조37억엔의 매출을 기록한 게임사업.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의 파워를 갖춘 분야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다른 메이저 업체가 갖지 못한 강점이다. 또한 직격탄이 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부품 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적다는 점도 약진의 발판으로 작용했다. 소니는 올해 효자로 떠오른 가정용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2’의 증산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807만대에서 올해는 2000만대를 출하할 계획이다.
샤프 역시 액정사업에서 성과를 내며 113억엔의 당기순이익을 내 주목받고 있다. 샤프는 올해 액정사업을 더욱 강화할 방침을 세우고 10월에 액정화면에 회로나 반도체를 부가하는 ‘시스템 액정’ 양산을 개시할 계획이다. 범용액정을 주로 하는 한국 메이커와의 차별화를 통한 경쟁력 강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
◇올해는 재도약의 해=시장 회복에 힘입어 올해는 호전될 것이란 의견이 우세하다. 미국 경기의 회복세가 예상외로 빠르고 기업의 IT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부품 시장이 완연한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고 각사가 지난해 추진한 구조조정에 따라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감소했다. 이에 따라 각사는 올해 예상 당기순이익이 100억엔에서 1500억엔까지 가능할 것이란 예상치를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후지쯔는 현재 세계 IT투자 등 관련 산업이 회복기에 접어들었는지를 확신할 단계가 아니라는 신중한 입장을 표명, 올해 당기손익을 0으로 잡고 있다.
<도쿄 = 성호철 특파원 sunghochul@hotmail.com>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일본 9대 전기전자메이커 작년 실적 결산